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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Aug 05. 2024

예술가들의 재발견

<나의 사적인 그림> 우지현

엊그제 집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알베르토 망구엘이 <밤의 도서관>에서 말한 것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다.

"전통에 의해 고전으로 선언된 책과 우리의 본능과 감정, 그리고 이해를 통해 우리의 것이 되고, 그것을

통해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우리의 경험에 따라 해석되고 궁극적으로 첫 번째 독자가 되는 책 사이에는

연결될 수 없는 틈이 있다." 사실 책이 옆에 있어도 시간과 관심을 가지고 읽으면서 망구엘이 묘사한 것처럼 문학 작품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없다면' 고전 혹은 명작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16세에 서점에서 일하다가 눈이 멀어가던 보르헤스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줬다. 자신을 '독서가'라 칭하는 것도  보르헤스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집 근처 중앙도서관에는

<밤의 도서관>이 없고 유일하게 <나의 그림 읽기>가 있어서 대출했다.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엔 무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지내기 위해서 자주 도서관을 찾았다. 시원한 계곡이나

바닷가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될 때도 도서관으로 향한다. 잘 읽지 않던 소설이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고 다른 시대와 낯선 곳으로 여행한다. 이번엔 예술 분야 서가를 둘러보다가 이 책을 만났다.

우선 책에 실린 그림을 죽 넘겨보면서 마음에 와닿는 그림이 있으면 책을 골라잡는데 이 책은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그림들이 실려있었다.

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설명 보다 그림을 항상 가까이하고 살아가는 저자의 느낌과 생각을 만나게 되었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충분히 훌륭하고 좋은 그림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모든 그림이 화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그려진 것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과 추억, 사적인 공간과 물건, 욕망과 감정, 관심사, 취향 같은 사적인 세계로 삶은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쓴 글이다.

어떤 그림이 나를 사로잡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하며 다시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화가가 자신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서 나의 사적인 세계, 과거와 추억 속에 잠기거나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어보게 된다.

내가 한참 들여다보게 된 그림처럼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한적한 공간을 좋아한다. 그런데  

초상화가로 알았던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바람 부는 옥상에서 춤추는 여인의 모습에서 해방과 자유를

느꼈다. 대단한 그림도 아닌데 왜 마음이 끌렸는지 부분적으로 알던  존 싱어 사전트에 대한 글들을 더

찾아보았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 태생으로 부유한 미국인 부모 밑에서 자라고 파리에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주로 유럽에서 생활했는데 비범한 재능으로 젊은 시절부터 초상화가로 상공하고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교류했다. 모네는 파리 국립 미술학교(Ecole desBeaux-Arts) 동기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눴다.

귀족이나 부유층, 저명인사에게 의뢰받아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의 초상화를 주로 그린 줄 알았다.

대표작인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들>처럼 네 아이들의 개성을 잘 살린 그림뿐만 아니라 고혹적인

<마담 X>로 악명을 떨치고 유명해진 작가다. 자유분방한 생활과 화려한 외모의 마담 피에르 고트르를

그린 그림은 당시 외설적이라는 화단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초상화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으로 벌어진 스캔들 때문에 파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영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헨리 제임스였다. 두 사람이 동시대를 살았고 절친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미국인인데

유럽 문화에 익숙한 편이고 영국에 살게 된 배경도 비슷하니 통하는 바가 있었을 거다!  이전에 파리에 머물 때 살롱전을 관람하고 사전트의 초상화에 대해 솜씨를 극찬한 바 있던 헨리 제임스는 영국에서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헨리 제임스의 소개로 사전트는 런던 상류층의 초상화를 의뢰받을 수 있었고 41세이던 1897년 영국 로열

아카데미 정회원이 되었다. 또 그를 미국 화단에 소개한 사람도 헨리 제임스인데 미국 대통령 두 명

(시어도어 루스벨트, 토마스 우드로 윌슨)의 초상화도 남기게 되었다.

사전트는 명성이 최고조에 달하던 51세에 자신의 스튜다오를 닫고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최고로 성공한 화가로 살롱을 드나들며 예술가 대접을 받고 여생을 즐기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 채석장에서 대리석을 다루는 인부들의 모습들도 100여 점이나 그렸다.

특히 <베네치아 운하>를 비롯한 2000여 점의 수채화에서 과슈를 사용하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빛, 색, 구도의 효과와 투명성, 단순함을 나타냈다. 과도하지 않고 신선한 느낌을 잘 살린 작품들이다.

그는 음악적 재능도 있어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서정적이고 뛰어난 가곡과 레퀴엠등을 작곡한 가브리엘 포레를

존경했다.

현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그가 57세 때 작업한 헨리 제임스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다. 70세

생일을 기념해서 친구들이 의뢰한 것이다. 당시 사전트의 초상화 한 점 가격은 1억 원에 가까웠는데 과거

도움을 받은 그는 제임스 후원자 연합이 마련한 그림값을 끝내 받지 않았다고 한다.

초상화를 받아 든 제임스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고, 나무랄 데 없는 걸작"이라고 찬탄했다. 누가

보아도 서로 잘 알고 자연스럽게 자세를 취한 초상화엔

작가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사전트는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기록할 뿐 아디"라고 말했고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행운을

누렸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세게를 그림으로 묘사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계속해서 다양한 화풍으로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했다는 사실이 참 부럽고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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