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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pr 17. 2023

포드 V 페라리

이성의 포드와 심장의 페라리 사이에 놓인 인간

모터스포츠는 자동차와 함께 태동하였습니다. 제조사 별 속력과 내구도, 기술을 시험하는 장이죠. 최초의 모터스포츠는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세계 3대 모터스포츠가 있습니다. 바로 포뮬러 1과 르망 24, 인디 500입니다. 모터스포츠는 차량의 기계공학적, 유체역학적 기술도 중요하지만, 차량을 운전하는 드라이버가 핵심입니다. 차량과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직전까지 몰아쳐야 하기에 높은 집중력을 요합니다. 단 0.1초만 늦게 반응하면 차량 손실은 물론 심각한 부상부터 사망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 모두 한계에 도전한다는 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1959년 캐롤 셸비는 르망 24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쥡니다. 그러나 심장 질환의 악화로 돌연 은퇴하고 셸비 아메리칸이라는 자동차 회사를 창립합니다. 셸비는 친구 켄 마일스와 함께 로컬 레이싱에 참가합니다. 마일스는 다혈질이지만 운전에는 뛰어난 소질을 가졌습니다. 감독인 셸비는 마일스를 포르쉐 레이싱에 넣어주려고 하지만 강한 성격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포드 사의 마케팅 담당자 리 아이아코카가 셸비의 회사로 찾아옵니다. 헨리 포드 2세가 엔초 페라리의 도발에 레이싱에 참여하기로 했고, 포드 레이싱을 이끌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캐롤 셸비는 감독직을 수락하고 경주를 위한 차량 GT40을 제작합니다. 드라이버로 켄 마일스를 추천하지만, 마일스는 회사 임원과 갈등을 겪어 번번이 무시됩니다. 임원진의 개입으로 대패를 경험한 포드는 캐롤 셸비에게 전권을 줍니다. 드디어 마일스가 르망 24에 참가합니다.


 <포드 V 페라리>는 전쟁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대립 구도를 강조하기 위함인데요. 포드의 신세대 엔지니어들은 컴퓨터를 통해서 차량을 분석합니다. 켄 마일스는 털실과 테이프만 있으면 되죠. 일반적인 차량은 항력을 비롯한 유체역학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GT차량과 같은 경우에는 미세한 항력의 영향을 받죠. 이는 운전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거창한 기계 없이도 연륜과 느낌으로 문제를 감지합니다.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 구도는 제2차 세계대전과 같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인 미국과 추축국인 이탈리아의 대립이죠.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각 진영의 지휘관(엔초 페라리, 헨리 포드 2세)과 병사들의 싸움이죠. 그러나 <포드 V 페라리>의 핵심은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이 아닙니다.


 <포드 V 페라리>는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성격의 양 극단에 있는 두 인물이 서로에게 기대며 변화합니다. 마일스는 마지막에 팀을 위해 속도를 늦추고, 셸비는 마일스를 위해 본인이 판단하라는 선택지를 줍니다. 우승자를 향해 모두가 뛰어나갈 때, 둘 만이 반대로 걸으며 차량의 개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마일스는 아들 피터와의 대화에서 경주는 좁게 보는 게 아닌 넓게 보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마일스는 좁게 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알았죠. 반면 셸비는 마일스라는 나무보다 포드라는 숲을 보았습니다. 이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 성장합니다.


 <포드 V 페라리>는 색채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포드는 파란색이고, 페라리를 빨간색입니다. 빨강과 파랑은 각 기업의 상징색입니다. 보색 관계에 가까운 빨강과 파랑처럼, 두 기업은 추구하는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생산합니다. 빠르게, 더 많이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반면 페라리는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제작합니다. 고급스러운 차량을 만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페라리는 파산을 목전에 둡니다. 영화는 포드와 페라리라는 두 기업을 대조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두 기업을 보여주기 위함은 아닙니다. 두 등장인물을 비유하였죠. 캐롤 셸비는 포드, 켄 마일스는 페라리 같은 사람입니다. 전설적인 드라이버였던 캐롤 셸비는 현실과 타협하여 자동차 판매업을 합니다. 켄 마일스는 차량을 다루는 데 있어 장인 정신을 발휘하죠.

 조금 더 확장해 볼까요. 영화에 걸쳐 셸비는 검은색과 흰색 옷을 주로 입습니다. 반면 켄 마일스는 흰색 옷이 대부분이죠. 켄 마일스의 흰색 옷은 쉽게 더럽혀집니다. 드라이버이자 엔지니어이기에 기름때와 얼룩이 쉽게 묻습니다. 흰색은 순수를 상징합니다. 비비는 마일스를 기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셸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I’ll tell you what it is. A pure racer behind the wheel of your car. That’s Ken Miles.”

 순수한 드라이버.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서조차 브레이크를 논하였습니다. 처세술에 약하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아이와 같아지는 켄 마일스는 모든 색상을 받아들이는 흰색입니다. 반면 은퇴 이후 캐롤 셸비는 이것저것 많은 일을 당하며 타협했습니다. 처세술에 능한 셸비는 검은색으로 상징됩니다. 현실과의 타협은 사람과의 마찰을 줄였지만 정체성의 혼란을 가졌습니다. 검은색이 셸비의 복잡한 마음을 상징할 수도 있겠네요.


 캐롤 셸비의 심장과 GT40의 엔진은 동치입니다. 심장판막증을 가진 셸비는 심장 박동수가 130 BPM이 넘을 정도로 빠릅니다. 고장 난 엔진과도 같죠. 심장을 고치기 위해 심장약을 먹습니다. 차량의 심장은 엔진입니다. GT40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엔진을 여러 번 바꿉니다. 무거운 엔진을 가볍게, 빠르고 견고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는 켄 마일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셸비는 자동차 판매업자로서의 면모와 드라이버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그 방황은 영화 마지막에 켄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켄 마일스와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드라이버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였죠. 마일스가 엔진을 고치듯, 셸비의 심장병(혼란)을 고쳤습니다.

 셸비가 먹는 심장약과 마일스의 렌치는 동일한 의미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캐롤 셸비가 마일스 부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캐롤 셸비 : Then I started thinking that sometimes... uh, words... just... ar-are not useful. Tools are useful 'cause you can make stuff with 'em and you can fix stuff with 'em. Here.

 가끔씩 말(言)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셸비는 공구가 무언가를 고쳐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공구는 마일스이며, 심장 속 문제(정체성)를 고쳤습니다. 셸비는 엔지니어였던 마일스를 렌치를 통해 추모합니다.


 다시 초반으로 돌아가봅시다. 위에서 포드는 캐롤 셸비를, 페라리는 켄 마일스를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캐롤 셸비 내면으로 끌어옵시다. 열정과 장인 정신의 빨간 페라리는 가슴이 이끄는 드라이버로서의 정체성을, 차갑고 생산적이며 자본주의의 파란 포드는 이성이 바라는 자동차 판매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심장병은 결국 현실과 타협한 캐롤 셸비에게 드라이버로서의 미련이 남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분석은 기계적이고 분석적인 모습, 털실을 이용한 해결은 직감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입니다. <포드 V 페라리>는 자동차 판매원(포드, 파랑)과 드라이버(페라리, 빨강) 사이에 놓인 셸비의 투쟁을 의미합니다.


 “There's a point at 7,000 RPM... where everything fades. The machine becomes weightless. Just disappears. And all that's left is a body moving through space and time. 7,000 RPM. That's where you meet it. You feel it coming. It creeps up on you, close in your ear. Asks you a question. The only question that matters. Who are you?”

 7000 RPM에 임박했을 때 모든 것은 희미해지고 차량은 무게를 잃으며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만 있을 뿐입니다. 그때, 당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이 스치죠. 영화는 셸비에게 누구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셸비는 전설적인 레이싱 선수였지만 지금은 차를 팔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셸비는 파란색 스포츠카를 힘차게 몰고 나갑니다. 확신에 찬 주행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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