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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pr 29. 2023

쓰리 빌보드

분노에서 용서로 나아가는 과정

 <쓰리 빌보드>는 제게 특별한 영화입니다. 바로 영화에 빠지게 만든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만을 방영하는 채널에서 우연히 마주한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화염은 압도적이었습니다. 화염병을 들고 경찰서에 방화를 저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타오르는 불길과 샘 록웰의 당황하는 표정이 교차로 지나가는 순간, 메모를 하며 봐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불 꺼진 거실에 앉아 보이지도 않는 공책에 망막에 투영되는 장면들을 기록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기록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하여 해석 글을 쓰는 지금까지 왔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행동이 인생에서 빼고 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밀드레드 헤이스는 딸 앤젤라 헤이스를 잃었습니다. 강간범이 앤젤라를 강간하고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지역 경찰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일치하는 DNA가 없다” 뿐입니다. 그렇게 밀드레드는 단장의 고통으로 하루를 살아갑니다. 어느 날, 밀드레드는 길을 지나던 중 버려진 광고판을 발견합니다. 바로 광고 회사로 찾아가 광고판을 대여합니다. 광고판에 “How come, Cheif Milerby?”, “And still no arrests?”, “Raped while dying”이라고 썼습니다. 빨간색 광고판은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평판이 좋은 경찰관 밀러비 서장의 편이 다수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밀드레드를 조롱하고 위협합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습니다. 밀드레드는 딸의 살인자를 찾기 위해 다시 나섭니다.


 <쓰리 빌보드> 속 광고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먼저, 밀드레드의 내면입니다. 영화는 광고판에 쓰인 문구보다 뒷면의 나무 구조물을 더 자주 제시합니다. 3개의 광고판은 밀드레드를 상징합니다. 빨간색 배경에 검은색 글씨로 쓰인 강렬한 광고판은 충분히 선동적이고 공격적입니다. 냉철하고 폭언을 퍼부으며 곁을 내주지 않는 밀드레드의 겉모습과 닮았죠. 그러나 광고판의 뒤는 곧 부서질듯한 나무입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합니다. 광고판의 뒷모습은 속이 여리고 순간순간 쉽게 무너지는 밀드레드의 내면입니다. 불이 붙은 광고판을 보며 밀드레드는 무너집니다.  

 두 번째는 종교성입니다. 밀드레드는 반종교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가장 종교적인 인물입니다. 광고판 대여 기간은 부활절 당일까지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은 이후 사흘 뒤에 부활합니다. 세 개의 광고판은 사흘이라는 기간과 연결되죠. 세 개의 광고판은 시간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How come, Cheif Milerby?”, “And still no arrests?”, “Raped while dying”은 ”죽음 - 수사 - 미해결“이라는 구조를 거꾸로 공개합니다. 밀드레드가 사슴을 만나 위로받는 장면에서 그녀는 마지막 광고판 “Raped while dying” 앞에 있습니다. 죽음 이전 앤젤라는 살아있었죠. 즉, 밀드레드는 광고판을 통해 은연중에 부활을 기대합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한 사슴은 환상적인 경험을 연출합니다. 사슴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죠. 사슴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속 이야기 <신성한 사슴 죽이기(The Killing of a Sacred Deer)>의 은유입니다. 미케네의 군주 아가멤논은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사서 저주를 받습니다. 역풍으로 트로이 원정에 출정하지 못하죠. 어느 날, 아가멤논은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신탁을 듣습니다.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면 저주가 풀린다는 내용이었죠. 딸을 지킬지, 전쟁에서 명성을 얻을지 고민하던 그는 딸을 제물로 바치기로 합니다. 이피게네이아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는 그녀를 사슴과 바꿔 칩니다. 밀드레드는 앤젤라가 화를 내며 집을 나가기 전, 홧김에 “Yeah, I hope you get raped on the way, too!(그래, 나도 네가 가는 길에 강간당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합니다. 의도한 말은 아니겠지만, 이 말이 아르테미스의 저주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신성한 사슴 죽이기>를 살짝 비틀어 무너진 밀드레드에게 사슴을 제시합니다.


 <쓰리 빌보드>의 주된 색상은 빨강입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빨강의 의미는 변화합니다. 영화 초반부의 빨강은 분노입니다. 살해당한 딸의 시체, 빌보드의 강렬한 빨간색, 딕슨이 밀드레드에게 뿜는 피가 해당합니다. 그러나 한 사건 이후 빨강은 용서의 색이 됩니다. 전환의 중심에는 광고판 주인 레드가 있습니다. 딕슨은 윌리엄의 자살 이후 분노에 차 레드를 창 밖으로 던집니다. 영화 후반부, 딕슨이 용의자에게 얻어맞고 입원했을 때, 우연히 레드와 같은 병실을 사용합니다. 딕슨은 레드에게 사과합니다. 레드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다가 이내 오렌지 주스를 건넵니다. 오렌지 주스는 용서의 의미입니다. 레드(Red; 빨강)라는 이름과 화해의 오렌지 주스는 상징적입니다. 해당 사건을 ”오렌지 주스 화해“라고 부르죠. 오렌지 주스 화해 이후 죽음과 분노의 빌보드는 인부와 제임스, 동료의 도움과 딕슨의 노력으로 용서의 빨강이 되었습니다.

 밀드레드의 집에는 빨간색 그네가 있습니다. 해당 그네에 앉는 인물은 밀드레드와 딕슨, 윌리엄인데요. 이들은 모두 경계에 있습니다. 윌리엄은 삶과 죽음, 밀드레드는 분노와 용서, 딕슨은 이성애와 동성애의 경계에 있습니다. 딕슨 엄마의 발언이나 레드를 향한 가학성 등은 이런 딕슨의 동성애적인 모습을 제시합니다. 각각은 각자의 콤플렉스로 작용하며,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입니다. 빨간 그네는 그런 아슬아슬함을 상징합니다.


 영화 초반, 버려진 광고판에는 기저귀 브랜드인 하기스 광고가 남아있습니다. 밀드레드는 해당 광고판을 보고 레드를 찾습니다. 하기스 광고판에는 “____ of your life”라고 쓰여있습니다. 빈칸 부분은 판자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죠. <쓰리 빌보드>는 바로 그 빈칸을 찾는 영화입니다. “____ of your life” 즉, “당신 인생의 ____”은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분노’가, 후반부에는 ’용서‘가 대입됩니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한다”라는 문장을 제시하여 분노가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공개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밀드레드는 딕슨과 함께 용의자를 찾아 나섭니다. 트렁크에는 산탄총과 음식이 함께 들어있죠.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추측하건대, 결말은 용서로 끝날 것입니다. 오렌지 주스 화해에서 레드가 딕슨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었듯, 밀드레드도 총알 대신 싸간 음식을 나눌 겁니다. 레드가 딕슨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는 순간, 딕슨은 깨달았습니다. 밀드레드 또한 목숨을 걸고 딸의 파일을 지키는 딕슨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전 남편을 와인병으로 내리치지 않음으로써 남편을 용서합니다.


 <쓰리 빌보드>는 분노에서 용서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습니다.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딕슨과 함께 용의자를 찾아 나선 밀드레드는 용의자를 마주하면 어쩔지 모르겠다고 답하며 마무리됩니다. 강하고 차가운 밀드레드는 마지막에서야 웃습니다. 비로소 용서를 깨달은 자의 모습일까요. 영화는 현실적입니다. 보는 사람이 지칠 정도로 현실적이죠. 그래서 담는 주제가 커집니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한다.“ 이 말이 ”용서는 더 큰 용서를 야기한다“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화, <쓰리 빌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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