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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May 17. 2023

타짜

염세주의적 대한민국 재건사

 “화투는 슬픈 드라마야.“ 섰다(‘섯다’라는 표현은 표준어가 아닙니다)를 배우고 싶다는 고니에게 평경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토록 잔인하고 처절한 노름판을 묘사한 대사가 또 있을까요. 세상에 안전한 노름판 없고, 건전한 노름꾼 없다고 합니다. <타짜>는 이런 불안정한 세계에 발을 담근 고니라는 인물의 서사를 따라갑니다.

 <타짜>는 여러 번 반복해서 감상한 영화입니다. 좋아하는 한국 영화로 <타짜>를 선정하면 대개 주변에서는 ‘도박 영화가 뭐가 좋다고’라는 반응입니다. 도박이라는 강렬한 소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소재 너머의 의미를 분석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다시 본 <타짜>에서 보이지 않던 게 보였습니다.


 1990년대 초, 철이 없는 청년 고니는 가구창고에서 일합니다. 고니는 우연히 동료 박무석의 섰다 판에 참여하고 모든 돈을 잃습니다. 노름이 끝날 때쯤, 설계된 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고니는 박무석 일당을 찾아 나섭니다. 한 노름판에서 작두를 들고 난동을 부리던 고니는 타짜 평 경장을 만납니다. 고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삼고초려하여 평 경장의 제자로 들어가는 데 성공합니다. 함께 전국을 유랑하며 인생과 기술을 배웁니다. 마지막 원칙을 알려준 평 경장은 고니와 정 마담을 연결하고 떠납니다. 얼마 뒤, 평 경장이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고니는 평 경장의 숙적인 아귀를 의심합니다. 고니는 고광렬이라는 타짜를 만나고 아귀를 찾아 떠납니다.


 <타짜>는 허영만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특히 <타짜 1부: 지리산 작두>를 바탕으로 하는데요. 영화는 원작을 조금 각색하였습니다. 원작에는 ‘섰다’ 뿐만 아니라 ‘도리 짓고 땡’이나 ‘갑오 잡기’등의 다른 게임들도 소개됩니다. 또한, 1960년대 전후에 한몫 잡기 위해 투전판에서 노름판으로 넘어온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는 원작의 인물과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시대와 내용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원작에서 큰 비중이 없던 정마담의 이야기를 살리고, 고니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축합니다. 영화 속에 묘사되는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를 통해 199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익숙한 시대적 배경으로 관객의 몰입을 한 층 끌어올렸습니다.


 <타짜>는 고니라는 인물의 성장과 몰락을 통해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주제로 해석되었는데요. 한 가지 다른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타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함축하는 영화입니다. 설명을 위해 허영만 작가의 원작을 조금 살펴봅시다. 상술했듯, 원작의 배경은 1950 ~ 60년대입니다. 이승만 정권부터 윤보선, 박정희 정권까지를 아우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합니다. 1953년의 휴전 협정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국토는 파괴되었습니다. 전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라였죠. 원작에서는 이 시대에 가진 것이라곤 나무 패는 기술뿐인 김곤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영화에서는 나무꾼이라는 김곤의 직업을 계승해 목재 가구 창고 직원으로 각색했습니다.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고니는 호구에서 타짜까지 성장합니다. 전쟁 이후 모든 것을 잃은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과 닮았습니다. 즉, <타짜>는 고니를 통해 대한민국 재건사를 ‘뒷세계’ 판에 대입하여 제시합니다. 핵심은 부정한 돈과 기술에 있습니다.


 고니는 전국을 유랑하며 많은 돈을 축적합니다. 고니는 고광렬, 정 마담과 함께 번 돈으로 사치를 부립니다. 고광렬은 화란의 술집에서 ‘양 적고 비싼 술’을 요구합니다. 정 마담은 고니에게 BMW를 타게 해 줍니다. 돈을 잃은 수학 교수에게 엄청난 양의 개평을 주기도 하죠.

 대한민국에 대입해 볼까요.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 개발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눈 부신 ’ 한강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결과에 집중한 나머지 과정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는 결과중심의 경제 성장이 낳은 부작용을 의미합니다.

 고니는 최후에 어떻게 되었나요? 자신의 스승과 같이 달리는 기차에서 흩뿌려지는 돈과 함께 떨어집니다. 이때의 기차는 모두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과 역사를 함축합니다. 흩뿌려지는 돈은 97년도의 외환위기(IMF)를 의미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볼까요. 모든 것을 경험한 평경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고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화투는 슬픈 드라마야. 아예 모르는 게 약이지.”

 평 경장의 말속 화투를 대한민국으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타짜>는 고니를 통해 대한민국의 결과(황금) 만능주의적인 경제 개발 과정을 염세주의적으로 표현한 영화입니다. 원작의 경우에는 경제 개발 과정이 아닌 대한민국 재건(再建) 사가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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