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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Jun 05. 2023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사유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

비속어 ‘무식한 군바리(군인)’라는 말을 다들 들어 보셨지요? 대한민국 군필 남성이 이 말을 쓴다면 아마 군 생활 당시 느꼈던 모멸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감정을 비틀어 표현한 것이고, 미필이거나 군대와 상관없는 사람들은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파블로프의 개와 군인을 연결 짓는 사건을 떠올리는 순간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군인 정신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국토방위’, ‘열정’이나 ’ 희생’을 떠올립니다. 혹은 ‘복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참된 군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자격 중에서 개인적으로 ‘사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유의 과정이 없으면 군인은 그저 소모품인 살상 무기에 불과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슈퍼 혈청을 맞고 캡틴 아메리카가 된 스티브 로저스는 나치와 싸우던 중 70년 동안 얼음 안에 갇힙니다. 다시 깨어난 현재는 갇혀 있었던 시간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해 아침마다 구보를 하다가 공군 소속의 샘 윌슨(팔콘)을 만납니다. 둘은 파병으로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고, 이런 동병상련으로 친해집니다. 조직 쉴드의 명령을 받아 작전을 수행하던 스티브는 국장 닉 퓨리와 사무총장 알랙산더 피어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알게 됩니다. 스티브는 해당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꿰뚫어 보고 반대합니다. 닉 퓨리 또한 계획의 연기를 제안합니다. 그러던 중 닉 퓨리가 암살자 윈터솔져의 공격으로 사망합니다. 이 계획을 반대하여 쉴드의 제거 대상이 된 스티브는 샘과 함께 조직의 진실을 마주합니다.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는 대부분 미국의 현주소를 내포합니다. 마블의 <아이언맨>의 경우 미국과 중동의 갈등을, DC의 <더 배트맨>은 희생을 통한 미국의 부활을 표방합니다. 그렇기에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인피니티 사가(이하 인피니티 사가)”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신화입니다. 그 신화는 전 세계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미국스러운 작품뿐만 아니라, 원작의 캐릭터와 닮은 배우, 섬세한 캐릭터 구축, 매력적인 빌런과 하나로 연결되는 이야기 구조 때문입니다. 인피니티 사가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과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가 주인공인 대서사시입니다. 기업가인 토니 스타크는 현재의 미국을, 군인인 스티브 로저스는 과거의 미국을 상징합니다. 이 둘이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과정이 인피니티 사가이죠.


 잠깐 아이언맨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아이언맨은 실수를 통해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합니다. 군수 업체를 운영하는 토니는 중동에서의 피랍 과정에서 자신 회사의 무기가 악용되는 현장을 마주합니다. 불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죠. 토니는 무기 사업의 철수를 선언하고, 자신만이 다룰 수 있는 아머(아이언맨 슈트)를 개발합니다. 토니는 ‘무한한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기업가인 토니는 규칙을 무시합니다. 돈이 많고 천재인 그에게 법과 규칙은 걸림돌입니다. 그런 그가 수많은 경험과 실수를 하면서 자신과 반대되는 협업, 도덕, 정의, 인류애에 대해 고민하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무시했던 규제와 규칙, 법의 필요성을 깨닫습니다.


 토니 스타크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 스티브 로저스는 군인입니다. 군인에게는 규칙과 규율이 중요합니다. 상관의 지시를 따르고 복종해야 하죠.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기에 복종은 절대적입니다. 그는 가치관이 전혀 다른 토니와 치열하게 갈등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타락하고 세속화된 집단의 명령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추락하며 규칙과 규율, 집단으로부터의 탈출을 추구합니다. 즉 사유할 줄 아는 군인으로 거듭나면서, 자율의 가치를 깨닫게 되죠. 스티브가 알을 깨고 나오는 데에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는 캡틴 아메리카의 첫 번째 영화 <퍼스트 어벤져>의 변주입니다. 헬리캐리어에서의 전투는 <퍼스트 어벤져>에서 나치와의 전쟁과(유태인 게토와 학살의 은유) 유사하고,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인 최초의 유니폼을 다시 입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스티브 로저스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 반복적으로 추락합니다. 초반, 피랍된 쉴드의 배 탈환 작전에서 낙하산 없이 바다로 뛰어들고, 마지막에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막은 이후 추락하는 헬리케리어에서 떨어져 물에 빠집니다. 물은 정화를 상징합니다. 이런 추락은 불의한 규칙과 명령을 어기는 것으로 그를 옥죄고 있던 과거의 규율과 규칙에서 벗어나 주체적 자아를 찾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는 인물 간의 대비를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블랙 위도우와 캡틴 아메리카, 알렉산더 피어스와 닉 퓨리 등 규칙을 지키려는 자들과 벗어나려는 자들을 대비합니다. 영화 속 인물 중 눈에 띄는 대비는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입니다. 윈터 솔져는 반복적인 세뇌를 통해 상부의 지시를 무조건 따릅니다. 버튼을 누르면 사람을 죽이는 살상무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캡틴의 처음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캡틴은 쉴드의 비밀을 파헤치며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살아난 닉 퓨리와의 대화를 통해 명령을 무조건 따르는 군인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적확한 명령을 내리는 ‘캡틴’으로서의 주체성을 확보합니다.


앞서 할리우드의 히어로 영화는 미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오바마 행정부는 미정보기관 NSA로 하여금 민간인을 도청하는 ”프리즘 프로젝트“를 감행합니다. ‘9/11 테러’ 이후 테러를 방지하고 불순분자를 감시하겠다는 목적이었는데요. 2012년, 프로젝트의 시스템 관리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도덕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언론에 국가 기밀을 폭로합니다. 영화 상에 등장하는 ”프로젝트 인사이트“는 ”프리즘 프로젝트“의 영화적 표현입니다. 3대의 헬리캐리어와 쉴드 본부 이름인 트리스켈리온(Triskelion | tri- 접두어는 삼각형을 의미)은 삼각형인 프리즘을 암시합니다. 현실의 오바마 행정부와 영화 속 쉴드는 국익과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자유를 침해합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저지른 만행의 연장선입니다. 쉴드 속 하이드라의 잔재는 ‘세계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를 정당화하는 미국의 모습을 함축합니다. 그토록 혐오했던 나치가 행한 짓을 미국이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군인에게 꼭 필요한 자격은 ‘사유’라고 말했습니다. 유태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사유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에 선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이자 슈츠슈타펠(나치 친위대) 장교입니다.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반성하는 기미 없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 “우리는 공무원이며 국가를 위한 행위일 뿐이었다.”. 즉,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 시대의 홀로코스트는 합법이었고, 애국이었음을 말합니다. 이는 틀렸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남을 해할 권리는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잘못된 지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참혹함을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독일인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사유 없는 무조건적인 복종은 비극을 초래합니다.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합니다. 손가락 하나의 힘으로 당긴 방아쇠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가늠해 봐야 합니다. 그런 사유가 부재한 군인, 군대는 아이히만과 다르지 않으며 그저 살상무기, 살인자 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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