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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을 넘어

by 무명

공간에서 '기능'은 오랜 시간 중요한 기준이었다.


과거 공간은 과도한 장식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 흐름은 20세기 초 모더니즘이라는 예술 운동과 함께 전환점을 맞이한다.



모더니즘은 불필요한 장식은 제거하고, 본질을 강조한 예술 운동이다.


건축에서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번의 말과 함께, 공간에도 본질이 있음이 널리 알려지고, 본질을 바탕으로 한 기능주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정신과 맞물려, 공간을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의문점을 품기 시작한다.


기능적으로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공허함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고민에 빠졌다.


기능주의는 명확하고 단단하지만, 지나친 효율성만 강조한 나머지 너무 기계적이고 딱딱한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지나친 효율성 속에서 감정이 빠져버린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많은 문제는 이성적인 판단과 선택으로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만은 아니다. 감정과 이성이 혼합된 존재이다.


이성으로 계획하고, 감정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그제야 사람들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능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사람과 환경 그리고 감정과의 상호작용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공간과 처음 만남에서 느낀다.


공간의 형태에서 구조를, 동선에서는 기능을 말이다.


마감재는 촉각을 자극하고, 컬러는 시각적 인상을 남긴다.


조명과 그림자, 벽과 바닥의 비율,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질 때 공간은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감각적 반응은 ‘표면적인 특징’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읽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색상, 마감재, 형태 너머의 보이지 않는 맥락과 의도를...


공간의 숨겨진 의도는 추상화와 같다.


형태와 구성이 있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공간을 접할 때의 감각, 감정, 경험을 넘어 시간에 흐름 속에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같은 마감재와 가구를 사용했더라도, 공간에 흐르는 '맥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감정은 달라진다.


공간은 어떤 것을 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담고, 어떻게 느껴지느냐로 기억된다.


어떻게 관계 맺고, 어떻게 흐르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의 장(場)’으로 해석된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기능중심의 공간을 넘어서,

맥락과 여백을 통해 감정이 담길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려 한다.


공간은 말하지 않아도 말한다.

그 안에 스며든 감정과 분위기로 사람들을 감싼다.


누군가는 고요함을,

누군가는 위로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


눈에 띄는 화려함이 아니라,

감각의 밀도와 감정의 여운으로 남는 공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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