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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체류

by 무명

요즘 같이 따뜻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부는 날이면 자꾸 생각나는 공간이 있다.


홍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경의선 책거리 방향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꽃잎이 흩날리며 내 뺨을 문지른다.

일상 속의 작은 사치이자, 어쩌면 드라마 속 배경처럼 몽환적인 풍경은 잠시나마 내가 주인공인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다 고개를 좌측으로 돌리는 순간,

'철길 부산집 홍대점.'이 나온다.


홍대 번화가 상권 가는 살짝 거리를 둔, 경의선 산책로와 상점 사이 경계선에 위치한 곳.


해가 뉘엿뉘엿 산고개를 넘기 시작할 무렵, 이곳의 하루는 비로소 깨어난다.


반쯤 열린 오르내리 창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흐르고,

그 너머로 전해지는 녹진한 어묵국물의 향이 마음을 달큼하게 적신다.


산책로와 상점 경계선에 위치한 닷지, 그 공간은 마치 소개팅 2차에서 느끼는 감정의 거리감과도 닮아있다.


첫 만남에서 긴장감은 조금 옅어졌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운 상태.


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과 처음이라 조심스러운 적절한 긴장감 사이.


둘 사이 거리는 가까워질 듯, 아직은 아닌 450mm의 거리.


처음 이 공간을 발견하게 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운동하러 가는 길, 혹은 산책하던 중에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 어귀.


낮에는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이 공간도 마치 기지개를 켜듯 서서히 제 존재를 드러낸다.


낮에는 스쳐 지나치던 그 장소가 어느 저녁부터인가 마음을 붙잡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창 너머로 스며 나오는 불빛이, 또 어느 날은 밖으로 퍼지는 어묵국물 향이 이상하리만치 그 공간에 마음을 두고 가게 만들었다.


한동안은 관찰만 했다.

가고 싶어도, 늘 만석이었고 어딘가 쉽게 발 디딜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렇게 탐색만 하기를 언 2달.


결국 어느 날,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어묵이 맛있는 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묵도 맛있었지만, 맛보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더 끌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조금은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을 때.


꼭 말하지 않아도 그저 마주 않아 있기만 해도 서로를 조금 더 알아 갈 수 있는 분위기.


나는 이 공간의 끌림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산책로와 상점사이, 안과 밖의 경계를 닮은 닷지 자리.

그리고 그곳에 앉았을 때, 적절한 긴장감과 안온함 사이에서 유지되는 450mm의 거리감.


그게 내가 이 공간에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였다.

당신은 어떨까?


당신의 발걸음을, 자꾸 향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면, 그건 어떤 분위기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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