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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Sep 26. 2021

오징어 게임, 길티 플레저를 자극하다

오징어 게임, 이 드라마 건강한가?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흥행작,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미국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달하는 흥행 성과를 내었기 때문에 공중파 뉴스와 종편 뉴스들도 이 드라마에 주목중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이 드라마, 건강한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공개 전까지 심의위원회의 잔인함 평가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주목받았다. 배우 이정재의 넷플릭스 작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용불량자'에 해당되는 수억원의 빚이 있는 사람들의 총살 게임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이 그래서 불편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유를 들어야했는데 그것이 '잔혹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넷플릭스의 화제작은 다 '자본주의'와 '범죄' 키워드이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드라마 중 인기가 있었던 작품은 <킹덤>, <인간수업>, <좋아하면 울리는>, <스위트홈>, <오징어 게임> 이다. 이 중 <좋아하면 울리는>을 제외하면 로맨스 장르보다는 액션, 스릴러, 범죄에 취중된 자체 제작 현황을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수업은 '청소년 성매매'와 부모에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일탈이 주된 이야기였기에 그 충격 정도가 컸다. 또한 흡연, 성매매 거래, 폭력 등의 적나라한 묘사가 옳았느냐는 문제에도 당면했다. 청소년들이 모바일로 도박을 하고, 가상화폐로 거래하기 시작한 사회 현실에서 불법을 저지를 루트를 상세히 보여주었다는 점은 매우 경계할 만하다.


  청소년 성매매를 경계하고 비뚤어진 사회를 고쳐보자는 마음은 물론 기획의도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사회문제를 일깨운 작품이 인간수업이었냐고 물었을 때 글쎄, 이게 고발인가 싶은 전개가 더 많았다. 음지의 사회 현실을 보고 충격 받은 이들이 더 많았겠지만 이 작품이 등장하면서 이를 악용할 사례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은 아닌지?


  또한 오징어 게임은 또 다른 소외 계층인 신용불량자들을 타겟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빗나간 윤리 의식을 게임에서 활용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게임 방식을 용인하게 만들었다. 이런식의 범죄물은 기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스토리 전개 방식을 깼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되는 이유'가 돈으로 귀결되는 스토리는 옳은가? 그들은 살아도 이자를 갚기 위해 쫓길것이고, 도박을 통해 돈을 벌고, 가족들을 착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오징어 게임의 죽음을 정당화했다.


  또한 '인신매매'의 장면은 <인간 수업>의 청소년 성매매처럼 극도로 갈리는 소재다. 법적으로도 금지되었고, 사채를 쓴 주인공들이 장기포기각서에 사인을 하는 등의 장면이 시청자에게 너무 쉽게 노출된다. 이 사람들이 빚이 많아서 장기매매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은 극의 전개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자극과 재미를 위해서 장기 적출의 장면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2. 인간의 '죽음'과 '살인'을 쉽게 게임의 요소로 사용하는 방식

  가장 유명한 생존물 중 하나인 <배틀로얄>은 살아남는 게임 컨텐츠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오징어 게임도 이 같은 배틀의 방식을 차용한다.


  마이너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나 박찬욱 감독의 잔혹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죽음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킬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는 부당함에 대한 복수가 그들의 가치다.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은 미혼모인 고등학생으로 이를 이용한 어른에 의해 감옥 살이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복수로 대체하는 것과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처럼 개선할 수 없는 삶을 한 방 게임에 배팅한다는 개념은 관객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친절한 금자씨의 사례를 우리는 길티 플레저라고 부르지 않지만, 사람을 살해함으로써 돈을 번다는 엽기적일 수 있는 생각은 길티 플레저가 된다. 왜? 그것이 게임의 방식으로 풀어졌기 때문이다.


  건강하지는 않아도 부당함에 대해 주인공이 인생을 걸고 원인을 해소한다는 전개는 박찬욱 감독의 많은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스토리텔링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인물들은 이를 건강하지 않은 사고방식과 건강하지 않은 선택으로 이어나간다. '내가  남자를 꼬시면 살아남을  있겠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지 않아서 나는 살아남아야지', '힘으로  사람을 때려죽어서 1억을 벌어야지'  같은 사고방식 말이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주인공의 찌질함과 유약함이 동정심을 발휘하여 이런 생각들을 감싸안으려고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극을 더욱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나간다. 너무 자극적이지만 그래서 재미있게, 죽음과 살인을 타자화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관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짧은 스낵 비디오가 우리를 점철한 사회다. 오징어 게임은 18세 청소년 관람 불가이지만 불법의 인터넷 세상에서 청소년이 접근 못할 콘텐츠란 이제 없다. 합법적으로 막아놓은 콘텐츠가 이 정도로 잔혹하다면, 불법의 세계에서 청소년들이 느낄 잔혹함은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질까? 나는 합법의 잔혹함도 수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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