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커리(이하 커리)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문장이 이상해도 별수 없다. 커리에 대한 기억은 한 개의 모양으로 반복된다. 커리를 휘휘 젓고 있는 내 모습.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는 남 일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그냥 좋아하니까 만들어 봤을 거고, 맛있으니까 계속 만들고 있겠지? 음, 나는 커리를 잘 만든다.
토마토 베이스의 제일 대중적으로 먹는 무르그 마크니는 토마토와 요거트의 산미를 적당한 수준으로 죽이고 큐민, 가람 마살라, 터메릭 등의 향신료를 능숙하게 배합해 잘 풀어준다. 향신료 덩어리만큼 먹는 사람을 고역으로 만드는 게 없으니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다. 주로 양고기를 넣는데 먹는 사람 취향에 따라 소고기로 대체 하기도 한다. 우유보다 더 진한 농후함을 내기 위해 액상 생크림을 붓는다. 토마토의 붉은색과 요거트, 생크림의 하얀색으로 딱 맞는 주황색을 찾는다. 계속 맛보면 맛보기 숟가락을 씻기 귀찮으니 색깔로 맛을 가늠한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젓다가 불을 끄고 씨익 웃어주면 된다.
시금치, 두부 같은 식감의 파니르 치즈를 넣은 팔락 파니르는 정말 직관적인 초록색이라 처음 먹어보는 이에게 먹이기 쉽지 않다. 주재료가 시금치여서 더욱 그렇다. 그래도 만든 입장에서는 한 번쯤 먹여보고 싶은 커리다. 은근히 마니아층이 있어서 막상 먹어보면 좋아하는 경우가 많거니와, 팔락 파니르가 만들기 더 까다로워서 노고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서다. 파니르 치즈를 구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시금치와 액상 생크림을 같이 믹서기에 갈기 때문에 만들고 나면 믹서기가 유제품으로 미끄덩거린다. 들어가는 향신료도 가람 마살라와 소금뿐이라 배합이 중요하다. 하지만 만들고 나면 이 과정들이 부드럽고 풍부한 맛으로 보상받는다. 녹진하다, 의 최대 긍정어는 팔락 파니르일거라 확신한다.
눈치 채셨는지? 나는 주로 남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커리를 만든다. 한 번 만들 때 곰국용 냄비에 잔뜩 만들어 소분하고, 식히고, 여기저기 뿌린다. 정작 나는 커리를 만들다가 냄새에 질려 잘 안먹는다. 처음 커리를 받아보는 사람들은 의구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일단 고맙다고 한다. 평소 얼렁뚱땅 사는 내 성격에 요리를 제대로 했겠느냐 싶은 거다. 하지만, 먹고 나면, 웬만한 파는 커리보다, 인도에서 먹은 커리보다 맛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하하 웃으며 말한다.
“당연하지! 그거 파는 것보다 재료비가 더 나가!”
이 모든 이유로 커리는 내게 아득함을 준다. 왜 만들기 시작한지도 모르겠고, 값도 많이 나가는데 어차피 다 남을 다 줘버릴 거 왜 만드는지도 불분명하고, 커리의 점성으로 만드는 수고도 나를 한없이 심연으로 빠지게 만든다.
그 심연이 좋다. 생각이 복작복작할 때 심연으로 가서 휘휘 뱅글뱅글 돌아가다 보면 커리는 정직한 맛을 내고, 그건 주변인들에게 기쁨을 준다. 아득하다는 건 단순하다. 단순함이 주는 확실함이 필요할 때 나는 커리를 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