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늪에 빠져 있던 이십 대 중반, 새벽녘 TV채널을 돌리다가 한 무협드라마에 시선이 갔다. 남주는 살수였고, 자신의 삶은 살인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마음속으로 지켜주고 싶은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나는 따뜻한 마음을 품었으나 냉담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주의 모습과 갈 곳을 잃은 나의 모습을 동일시했다. 드라마 속에서 흐르던 중국 노래는 계속 내 귓가에 맴돌았다. 가사의 뜻은 알지 못했으나, 애절한 선율만으로도 가사의 의미를 상상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배우의 이름을 잊고 드라마 제목도 잊었을 때, 난 다시 중드에 빠져 있었다.
내가 중드의 세계에 완전히 빠지게 된 건, 양미, 조우정의 <<삼생삼세 십리도화>> 때문이었다. 58부작의 드라마를 삼일만에 완주하고, 그걸 두 번 세 번씩 돌려본 후부터다. 그 뒤 많은 중드 선협물을 보고, 현대극도 봤지만 <<삼생삼세 십리도화>>의 남주 '야화'는 모든 남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남주로 남았다. 조우정은 이 드라마에서 '야화'와 '묵연'을 동시에 연기한다. 이 둘은 다른 분위기와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나는 그 둘에게 모두 빠졌다. '야화'는 사랑에 직진이고 쟁취하는 스타일이라면, '묵연'은 뒤에서 묵묵히 지켜주기만 하는 사랑을 한다. 둘 다 매력적이지만, 실제로 삼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내가 빠져드는 인물은 묵묵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권력을 쟁취하듯 사랑을 쟁취하는 약간의 똘끼도 있고 집착과 추친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특히, 나는 드라마 상에서 권력 지향형 인물을 좋아한다. 모든 걸 가졌지만, 사랑하는 이의 마음 하나는 가지지 못한 자의 서사, 왜 그런 것에 이끌리는지 알 수 없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백발왕비>>인데, 서브 남주 '부주'가 그렇다. 야망이 있는 냉담한 자지만, 유일하게도 '용락' 앞에선 감정이 앞서는 자다.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의 감정은 무참히 외면하면서, 자기도 용락에게 외면당하면 괴로워한다. 그런 '사랑의 역설'을 위에서 관망하듯 들여다보고만 있는 게 좋다. <<동궁>>과 같은 비극적 결말도 좋아한다. 이 드라마의 남주 '이승은'은 권력과 사랑을 동시에 가지려 했으나, 권력 때문에 사랑을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처참했다. 최대의 피해자는 '소풍'인데, 소풍은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 지기와 자신까지도 잃어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긴 흐름의 드라마를 끝내고 난 뒤 펑펑 울고 나면 쏟아부었던 감정과 에너지들이 흩어지고, 홀려 있던 마음도 제 자리를 찾는다. 그런 물결치는 감정들의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조금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이어야만 하는 내 일상들을 살아낼 수 있었다.
오늘도 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중드를 찾고 기다린다. 그것은 내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빛과 같다. 내가 즐겨마시는 커피와 맥주처럼, 내가 즐겨 읽고 필사하는 소설처럼, 내 일상을 이루는 소중한 한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