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용기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며
숙명여대에서 2020학년도 신입학전형에 트랜스 여성 A씨가 합격하였다. 이에 부산지역 대학 페미니스트로서 그녀의 선택과 용기에 대한 지지와 연대, 그리고 뒤늦은 축하를 전한다. A씨는 변호사 박한희씨에게 법대 지원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았으며, “성전환 수술을 받고 주민등록을 바꾼 트랜스젠더도 당당히 여대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최근 학내외의 입학 반대 동향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며 심경을 밝혔다. 사회 구성원들이, 심지어 같은 대학 캠퍼스를 거닐게 될 대학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찬반 논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을 봐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그녀에게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권리,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받고 지켜질 권리가 있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일이 논란이 되고, 수많은 공격의 타겟이 되는 지금의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의 위치가 폭력과 인권침해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준다.
정체성이란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특질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강제되는 사회적 틀에 그 사람이 도전하면서 써내려가는 서사적 의미를 갖는다.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서사의 내용이 정당한지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서사의 편집권이 오롯이 그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어야만 했던 공포와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실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작동을 멈추기 위해서 여성의 범위를 한정 지어야만 한다고 믿는 것은 교만한 사고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의 범위만 확정될 뿐 그 이외의 존재들은 밀려나고 지워진다. 남성의 영역은 한 순간도 도전받지 않고 확장되지도 않으며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러한 악순환을 깨뜨리고 성별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궁극적 지향이 되어야 한다.
성기의 모양이나 염색체로 개인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여성을 정의하는 기준이 정말로 성기와 염색체 따위라면, 여성의 존재 의의는 자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가부장제에서 지워진 존재들의 이름이 ‘여성’으로 뭉뚱그려졌을 뿐이다. 여성의 범위는 한정지을 수 없고 누구나 가부장제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고 폭력에 대해 발화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연대는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완벽무결한 가부장제의 피해자로서만 여성을 정의하려한다면 그 누구도 발화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권력관계가 남성이 아닌 이들을 배제하기 위해 어떻게 작동하며 폭력을 재생산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로 회귀하여 타인의 정체성을 판가름하는 것은 성별이분법을 공고히 하려는 ‘젠더머법관’ 노릇일 뿐이다.
인권은 총량이 정해져 있지 않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존중받는 사회는 모든 여성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이다. 존중받는 인권의 스펙트럼이 넓어질수록 사회는 진보하고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든다. 우리는 모두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하여 성별이분법을 해체하고 가부장제를 박살 낼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정상성의 탈환이 아니라 정상성의 파괴다.
가부장제에 억압당해 온 여성의 분노가 물처럼 흘러 또 다른 열악한 위치에 있는 존재들을 잠겨 죽게 하지 않는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캠퍼스페미네트워크 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