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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젤리 Mar 15. 2023

애증의 이유식 여정-ing

돌고 돌아 토핑이유식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 짓을 한다고?!


이유식을 처음 만들고 먹이면서 한 생각이다(세상 모든 엄마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기를 키우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이유식 먹이는 게 이렇게 힘들고 수고로운지. 이유식에 대한 기본적인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늦어도 생후 6개월부터 시작하기
2. 3일에 한 번 새로운 재료 추가하기
3. 초기>중기>후기로 갈수록 입자를 키우고 농도는 되직하게 만들기


세상에 처음 태어난 아기는 6개월가량 액체(모유 또는 분유)만 섭취한다. 하지만 영양학적 문제(철분 부족 등)로 다양한 음식 섭취를 필요로 하고, 대부분의 식재료가 고체이기에 결국 어느 시점(주로 돌 이후)부터는 삼시세끼 고형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6개월부터 돌까지는 고형식을 먹을 준비 혹은 연습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유식의 방식은 가장 전통적인 죽이유식, 반찬을 따로 주는 토핑이유식, 아기가 직접 손으로 집어먹게 하는 자기주도이유식 이렇게 대략 세 가지, 나는 토핑이유식으로 시작했다.


현재 우리 아기는 생후 10개월이다. 신생아 때부터 잘 먹는 아기는 아니었다. 아기가 직수를 힘들어해 두 달 정도 유축모유와 분유를 혼합하여 주 그 이후는 완전 분유수유 중이다. 200일 전까지도 하루 수유량이 500ml를 채 넘지 않았지만 체중은 그럭저럭 평균치를 따라가고 있었다(지금은 600-700ml 먹음).


이유식은 180일부터 쌀미음으로 시작했데, 초기 때는 날름날름 잘 받아먹더니 중기 들어서고 어느 순간부터 이유식을 먹이려고 하면 입을 꾹 닫아버렸. 초반에 몇 입 받아먹고는 입꾹닫. 아예 안/못 먹는 것도 아니고 오전/오후 시간대도 바꿔봤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아서 나도 답답 아기도 답답. 그러던 중 시댁에 갔다가 우연히 아기에게 배 한 조각을 쥐여주었는데 너무나 맛있게 잘 빨아먹는 것이다?! 사실 내 입맛에도 배가 너무 달고 맛있었다. 이후 아기가 심심해하거나 짜증 낼 때 가끔 귤이나 한라봉, 배 한 조각을 주면 너무 맛있게 잘 먹길래 '이참에 토핑이유식 때려치우고 아기주도로 가봐?' 하는 생각이  것이었다.


내가 떠먹여 주지 않고 아기가 스스로 먹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차 야밤에 부랴부랴 핑거푸드용 완자를 만들었다. 냉동실에 있던 토핑 몇 가지를 꺼내 쌀가루를 섞어 냄비에 쪄버린 것. 베이스죽(소고기쌀보리죽)은 어떡하지? 아 몰라, 그냥 해동해서 숟가락이랑 같이 주자! 마침 자기주도이유식용 스푼 하나가 있었다(아기가 떠먹이는 스푼을 계속 잡으려 해서 아기 손에 쥐여줄 용도로 하나 구매해 둠). 다음날 결과는...? 식사가 아니라 촉감놀이가 되었다. ㅠㅠ 그래도 먹기는 먹었다 자기 손으로!! 내가 떠먹여 주면 입도 안 벌리더니 자기 손은 입으로 잘만 가져가더라. 완자는 집어서 입에 가져갔는데 맛이 별로였는지 금방 뱉어버렸다. 그리고 너무 물러서 금방 다 부서졌다. 베이스죽 숟가락에 떠놓기만 하면 알아서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갈 줄 알았는데 촉감놀이가 너무 신났는지 숟가락에는 관심도 없더라. 나중에 검색해 보니 돌은 되어야 숟가락을 쓴다고 한다. 기존의 토핑이유식과 비교했을 때 일단 떠먹이는 스트레스가 없어서 확실히 마음이 편다. 내가 안/못 먹인 게 아니라 네가 안 먹은 거야.^^ 이런 마음. ㅎ 아기도 내가 먹여주는 것보다 확실히 더 즐거워했고, 나는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다.


그다음 날부터는 채소스틱으로 식사를 차렸다. 거의 잡고 놀기가 80프로 정도였고 입까지 가져간 건 20프로 정도였던 것 같다. 고구마를 손에 쥔 채로 손가락을 빨기도 하고... 얼마나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내가 떠먹여 줄 때보다는 훨씬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자기주도'라는 말 그대로 이유식 시간의 주체가 엄마인 내가 아니라 아기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마음이 편하고 부담감이 적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채소스틱은 그대로 식판에 놓아주고 기존에 토핑이유식을 진행하며 만들어둔 베이스죽을 스푼피딩(떠먹여 주는 방식)으로 줘보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일단 베이스죽 만들어 놓은 게 거의 10끼 정도 남아있어서 아깝기도 하고 아무리 분유가 주식이지만 소고기를 매일 조금씩은 먹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밥반찬이 주가 되는 한식에 적응시키려면 베이스죽을 주긴 줘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아기가 숟가락을 못쓰니 떠먹여 줘야지. ㅠ 그리고 이유식 진도상 여러 종류의 잡곡을 추가해야 하는데 핑거푸드 위주의 식단에서는 잡곡을 먹을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에 채소스틱을 쥐어주고 베이스죽을 떠먹였더니 잘 받아먹는 것이었다?! 그전에 떠먹여 줄 때는 절대 입을 안 벌리더니 머선일... 아무래도 식사시간이 너무 심심하고 지루했었나 보다. 그래서 한동안 죽이유식과 자기주도이유식을 병행하게 되었다. 소고기와 닭고기를 주로 한 베이스죽 두 가지를 대량생산하고 새로운 재료는 원물 형태로 주었다. 이때 문제였던 것이, 아기가 본인이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은 아예 입에도 갖다 대지 않아 알레르기 테스트를 할 수가 없었다. 찾아보니 자기주도이유식의 단점으로 아기가 편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이제는 다시 잘 받아먹으니 후기이유식부터는 스푼피딩 방식의 토핑이유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토핑이유식은 아기에게 각각의 고유한 음식 맛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죽은 재료가 다 섞임). 하지만 토핑 만들기가 상당히 번거롭다. 재료를 각각 손질해 익히고 다져서 큐브틀에 1회 분량만큼 소분해야 한다. 한 끼에 반찬을 최소 3~4가지를 먹이고, 새로운 재료도 3일마다 추가해야 하기 때문에 큐브 만드느라 정말로 아기를 돌볼 시간이 없다. 남편의 적극적인 육아참여로 중기이유식까지는 내가 직접 만들었는데, 하루 세끼 후기이유식 특히 토핑이유식은 자신이 없어 시판 큐브를 샀다. 엄마가 이유식 만드는 시간에 아기와 눈맞춤하고 놀아주는 것이 더 낫다는 나름의 결론!


그래서 현재 상황은 어떻냐고요? 중기에서 죽으로 한 끼 150ml를 먹었는데 요즘은 120ml 정도 먹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 먹는 양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나중에 때 되면 알아서 먹겠지 뭐, 배고픈데 어쩌겠어. ㅋㅋ 애증의 이유식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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