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기기를 시작하면서 육아 난이도가 급상승한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아기가 막 11개월에 들어선 지금, 내 체감 난이도는 아기가 잡고 서기 시작하면서 수직상승한 것 같다. 기어 다닐 때는 머리를 다치지 않게 물건을 치우고 거실에 만든 베이비룸 안에 가두어두면 끝이었다. 잡고 서기 시작한 지금은 소파뿐 아니라 울타리(베이비룸 가드)까지 잡고 선다. 단순히 잡고 서있으면 아무 문제없는데 아기는 자신을 과신해서인지 양손을 막 놓기도 하고 바닥에 앉을 때도 조심성 없이 우당탕탕 넘어지기 일쑤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거실에 4cm 두께의 비싼 매트를 깔아 두었으니. 그래서 베이비룸 안에서는 아기가 안전할 줄 알았다. 어제까지는.
어젯밤 아기를 씻기고 나서 로션을 발라주다 보니 아기의 왼쪽 어깨 바로 아래쪽 팔에 멍이 크게 들고 자그마한 혹이 생겨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너무 놀라서 하루를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아기가 넘어져서 운 적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파서 운 적은 없었는데. 그런데 멍의 크기를 보아하니 꽤나 아팠을 것 같다. 아가야, 너 괜찮니?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위치에 멍이 왜 생겼을까. 아하, 요즘 맨날 울타리 잡고 서 있었지? 아까 내가 점심으로 피자 두 조각 먹는 동안 아기가 울타리에 팔을 걸쳐두고 나를 계속 지켜보길래 '꽤 오랫동안 잘 서있네?'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동안 아기 팔에 멍과 혹이 생긴 것이었다. 아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가끔 잊어버리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 얼마 전에는 아기에게 양치질을 하다 칫솔에 피가 묻어 나왔다. 다행히 금방 지혈된 것 같은데 말 못 하는 아기가 얼마나 아프고 싫었을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
멍과 작은 출혈에도 이렇게 마음이 무너지는데 큰 병에 걸린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 아기의 모든 불행이 나에게 왔으면. 아기가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백 배 천 배 낫다. 나는 나의 불행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