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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Jul 10. 2019

아버지의 즐거움을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효자. 나보다 나은 청년.

환자분의 임플란트나 틀니 속에 가끔 아들의 마음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혹은 딸의 마음이 들어가기도 하며, 며느리의, 사위의 마음이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그 마음을 잘 넣어드려야하는 그 분들의, 일종의 도구가 된다.

 그러니 때론 많은 부담이 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진료를 마치고 수년뒤에, “원장님, 감사히 잘 쓰고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더한 보상은 없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이 환자분에게는 절대 이 말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환자분보다도 나는 더 완벽한 치료를 해드려야겠다고 스스로 몇 번이나 다짐하게 된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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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의 문턱은 높다. 그 문턱을 넘어서, 서른 정도 되어보이는 허름한 아들과, 농사일로 검게 그을린 얼굴과 손이 부르튼 아버지가 함께 다정하게 치과로 들어오셨다.

“아버님 잘 오셨어요. 입 안의 어디가 불편하세요?”

“...... 끄응... ”

  그렇다. 이 어르신께서는 듣지도, 말하지도, 그리고 읽지도, 수화를 하지도 못하시는 분이셨다.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들이 말한다.

 “원장님, 아버님이 여기가 불편하신 것 같습니다.”

 내가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입 안에는 거의 남아있는 이가 없었다. 치료받는 일도, 치료하는 일도, 쉽지않은 상황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드렸다. 한 시간 반 이상을 걸려서 아주 멀리서 오시는 분이라서, 더 마음이 쓰였다.

 아들이 말한다.

  “제가 취업한지 얼마안되었습니다. 몇 달 뒤부터 출근입니다. 그래서 그 전에 제가 아버지를 좀 치료 해 드리려구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원장님.”

 이제 취업을 바로 하려는 아들이 넉넉한 지갑이 있을리 없다. 그래서 나는 틀니를 하시라고 설명을 드렸다. 취업해서 모을 몇 년간의 돈을 다 미리 저당 잡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주위에 실제로 틀니를 사용하시는 분은 많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도 틀니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아드님, 그냥 아버지께 임플란트 대신 틀니를 하시라고 하는게 지금 상황에 맞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씀드립니다."

  아들은 말할까 말까 주저주저하다가 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원장님, 제가 어떻게든 그건 해결하겠습니다. 사실, 이제 저도 타지역으로 직장에 나가고, 아버님 혼자 농사지으시는 집에 남으시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침에 오는 신문도 읽을 줄 모르십니다. 티브이 뉴스를 보려고 해도 귀가 들리지 않으세요. 마음 껏 말도 하지 못하시구요. 제 아버지가 무슨 낙이, 무슨 사는데 재미가 있겠어요. 웃고 즐거우실 일이 이제 없으시단 말입니다. 원장님. 저는 아버님께 남아있던 마지막 즐거움인 먹는 즐거움, 씹는 즐거움까지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남은 삶을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으실까 생각이 들어요. 그저 잘 치료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원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났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의 그 나이 때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이 그대로 내게 전해와서 그 시절의 나를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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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 아버님의 치료를 마치고, 수 년이 지났다. 가끔 오시는 아버님을 보면 조금 더 살도 찌시고, 잘 웃으신다. 보람이 있다. 씹는 기쁨을 느끼고 계시겠지. 아드님의 그 따뜻한 마음을 아신다면, 아마 그 기쁨이 열배는 더 크실텐데. 그것을 내가 설명해드릴 방법이 없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의 장모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기라..”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선량하신 분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참 고맙다. 다들 자기자리에서 자신의 선의를 꽃피우고 있다. 나는 이런 것들로 경쟁하며 살고 싶다. 이런 환자분의 선량한 아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 아들의 도구가 되어 아버님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으니,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해야할 인생인가 생각한다.

(아버님의 사진은 아드님께서 올려도 된다고 허락해주셨습니다. 아버님 인상만큼이나 마음도 좋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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