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프로 Aug 12. 2021

EP1. 대형 로펌변호사로 일한다는 것은


오전 9시, 알람이 아닌 전화벨이 울린다.

새벽 6시에 퇴근했으니 잠이든 지 채 3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원래는 11시쯤 일어나서 출근할 계획이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뜨고 보니 우리 팀 변호사님이다.

‘압수수색인가.’ 생각하며 전화를 받는다.


“변호사님, A사에 검찰 압수수색이 나왔어요. 지금 긴급 지원할 수 있어요?”


일정표를 보니 4시에 회의가 있다.


“지금부터 4시 이전까지 가능합니다.”
“변호사님은 본사 사무실로 가주세요. 필요한 자료는 지금 메일로 보낼게요.”


살면서 압수수색을 경험해 본 사람은 거의 없기에 일단 압수수색이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된다. 예상하던 압수수색이든 예상치 못한 압수수색이든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현장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 빨간 눈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메일로 받은 자료를 검토하며 현장에 있는 회사 담당자들에게 전화로 형사 절차 등 대응 방안을 알려준다. 금방 도착하니 나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버티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서에게 전화해서 내 일정을 알리고 필요한 서류 준비를 지시한다.


대형 로펌 형사팀 변호사의 일과는 종종 이렇게 시작된다. 대형 로펌 변호사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 일정에 맞추어 자유롭게 출퇴근을 할 수 있다. 전날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보통 10시 이후에 출근을 하는데, 이른 오전에 전화가 온다면 급한 일이 터졌다는 뜻이다.


출퇴근이 자유롭다는 것은 검사로 일하다가 대형 로펌 변호사가 되었을 때 좋았던 점 세 가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건 그만큼 해야 할 업무량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언제 출근하든 상관없으니 가장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해야 할 일을 끝내라는 것이다.


대형 로펌에는 출퇴근 관리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관리시스템이 있다. 바로 '타임시트' 관리이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은 매일 0.1시간 단위로 타임시트에 자신이 한 업무를 기재해야 한다. "타임을 입력한다."라고 하는데 각 케이스별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했는지를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당연히 식사 시간이나 커피 한 잔 하는 시간, 담배 한 대 피는 시간, 업무 하나를 마치고 잠깐 숨 돌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 등 휴식 시간을 제외한 순수 업무 시간만 기재할 수 있다.


사람인지라 기계처럼 일만 할 수 없기에 실제로 사무실에 있는 시간과 타임시트에 적을 수 있는 타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타임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각 케이스에 투입한 타임은 클라이언트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므로 타임을 부풀려 기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오히려 계속된 야근으로 능률이 떨어져 업무시간이 길어지는 경우 실제로 업무에 투입한 시간보다 줄여서 타임시트에 기재하는 일도 있다.


즉 대형 로펌 변호사에게는 시간이 돈이다. 아니, 변호사에게는 시간이 돈이다. 사건 수임 시 수임료를 책정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으로 고려하는 사항 또한 이 사건에 투입해야 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시간은 소중하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양치하고 세수할 때도, 차 안에서도, 길을 걷는 중에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는 일을 하고 있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글을 쓰는 것은 정신없이 지나가는 내 삶을 기록하여 1년 후, 10년 후, 70년 후의 나에게 전달해주고자 함이다(100세 시대이므로). 매년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대학생 친구 1명과 멘토링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멘토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법조인을 꿈꾸며 검사와 변호사 생활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함도 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검사와 변호사로 일하면서 쌓은 법률 지식을 쉽고 간결하게 전달해주고자 한다.


오늘의 노래는 <볼빨간사춘기 - 워커홀릭>

"눈 떠보니 벌써 아침이 왔음"이라는 가사에 매우 공감하여 야근하고 다음날 출근길에 많이 듣는다. 모두들 푹 자고 개운한 아침이 되길.


- fin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