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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May 14. 2023

남편의 정장 바지

- 곁에 있던 시간만큼 여유가 불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꼬챙이처럼 빼빼 마르고 길쭉하기만 했던 남편은 어느 새 허리 34인치 바지도 간신히 들어가는 중년 아저씨의 몸이 되었다. 28인치가 34인치로 변해가는 동안, 숱 많던 검은 머리 사이로 희끗희끗 보이는 흰 머리가 늘어가는 동안 그는 내 곁에서 어느 덧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대며 싸우고, 서로를 향해 날선 말들을 던졌던 연애 초기의 우리는 이제 웬만한 것은 웃으며 넘기는 여유를 부리게 됐다. 아직도 투닥거리며 싸울 때가 있긴 하지만 서로 불평을 말하듯 툭툭 내뱉고 마는 식이다. 함께 한 시간만큼 몸이나 마음이나 여유가 붙은 모양이다.


작아진 남편의 바지를 버리며 그 시절의 우리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때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배를 내려다 보더니 이제는 발이 보이지 않는다며 난감해 한다. 그러나 발이 안 보이면 어떤가. 신발만 잘 찾아 신을 수 있으면 그만이고, 발톱은 내가 잘라주면 되지. 그렇게 한 번 더 마주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살 한 번 더 맞댈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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