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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Oct 29. 2023

아침 7시에 밥을 짓는 마음

- 니가 그 수많은 여자들 중 나에게 온 것은 운명이다

얼마 전, 올해 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사주를 보았다. 원래는 내년 초에 신년 사주를 볼 때까지 점사를 보는 일은 자제하려고 했는데 이 사주는 특이하게도 오픈 채팅방을 통해 예약과 상담 모두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해졌다. 우리 집에서 편안하게 비대면으로 상담할 수 있고 아이의 진로와 사업자들을 전문으로 본다고 하여 무척 끌렸는데, 무엇보다도 한 사람 당 거의 한 시간씩 점사를 봐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인당 십 만 원씩 주면서도 오 분에서 십 분 남짓의 시간 동안 성의 없는 상담만 줄창 듣고 왔었기 때문에 나에게 한 시간 남짓은 그만큼의 성의와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상담은 오전과 저녁 중, 편하신 시간으로 정하시면 됩니다. 아이들 등교 후나 취침 후를 다들 편해 하시더라고요.”      


역시 아이 엄마들과의 상담이 많아서였는지 상담자는 주부들의 일과를 잘 알고 있었다. 난 저녁 시간을 골랐다. 아이를 재우고 차분히 노트북 앞에 앉아 궁금한 것을 몽땅 물어보고 싶었다. 나와 아이의 생년월일시는 상담 하루 전날 상담자에게 넘겨 주었다. 사주 풀이를 한답시고 버리는 시간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한 시간을 모두 상담으로 빼곡히 채우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상담자는 우리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충동적이면서도 유혹에 약하다는 등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특성들의 나열이었다. 나는 키보드판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네네’만 연속해서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이 등장했다.      


  “보통 이런 사주가 ADHD 기질이 있는 사주인데 기회 되시면 검사 한 번 받아 보시면 좋겠어요.”      


세상에, 이미 사주만으로 아이가 ADHD라는 것을 알아 내다니. 그 말을 듣고 놀라는 것도 잠시 난 이미 아이가 ADHD 판정을 받았고 그에 따른 치료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라는 담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ADHD 아이들 특징 중 하나인 ‘꽂히면 과몰입, 흥미 없으면 세상이 무너져도 무관심’ 기질이 사주상으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고 했다.




흔히들 ADHD는 부계유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처음 ADHD 판정을 받았을 때 남편에게서 온 기질이라고만 생각했다. 남편 역시 아이가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닥 당황하지 않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내가 망연자실할 때마다 옆에서 남편은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남편은 아이 행동의 이유를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아이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도 같았다. 아이가 관계 속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남편 역시 똑같이 느꼈었다고 했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과 아이에게 맡겨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구분이 되어 있는 듯 했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연애를 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편도 ADHD였구나, 라고 생각하면 몽땅 이해되는 것들이었다. 남편이 물건을 사면서 스스로 뭔가 실수를 했다는 걸 인지했을 때, 그는 느닷없이 옆에 서 있던 나를 탓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민망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런 행동은 반복됐다. 그런데 지금 아이도 당황을 하면 내 탓을 한다. 숙제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인지하고 나서 “엄마가 말해줬어야지!”라고 말하거나, 본인이 뛰어가다가 넘어지고 나서는 “엄마가 잘 잡아줬어야지”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순간적인 민망함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졌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책임 전가를 함으로써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이 화가 났을 때는 충동적인 말을 참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뱉고야 만다. 그래서 남편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 가시 돋힌 말들을 실컷 던지고 나서 나중에 감정이 좀 풀린 후, 그 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늘 “그건 화났을 때 한 말이지. 진심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 “화 났을 때 한 말을 믿으면 안 돼.”라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엔 굉장히 충격적이었으나 나중에는 남편에게 익숙해지고 나서 어느 정도 걸러 듣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어떤 말을 해도 무덤덤하게 듣는 멘탈도 제밥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그 말을 100% 이해하진 못한다. 사람에게는 ‘이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할 말과 못할 말을 구별할 수 있고 적어도 그 말을 내뱉었을 때 벌어질 뒷 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 뒷 일을 생각할 겨를 따위가 없는 것 같았다. 멀티가 안 되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 감정에만 충실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 역시 본심과 다르거나 본심보다 과장돼 있는 말들을 이따금 내뱉는다. 하지만 다행히 아이는 마음이 여리기도 하고, 남편보다 금방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는 편이기 때문에 빨리 사과를 한다. 그때마다 나는 일일이 티를 내진 않지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남편이 아이의 미래가 될까봐 염려한다.  

  

그 외에도 시간 약속을 했을 때 약속 시간을 20분 정도 남겨 놓고 어슬렁어슬렁 준비를 한다던가 (시간 관념 취약) 문제가 발생한 후, 그 원인 제공자가 본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사람들이 비난하는 내용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혼자 서운해 하는 경우가 있다. 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에는 초점을 두지 않고 ‘상처 받은 내 마음’만 안중에 두는 것이다. 이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 체계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이 역시 비슷한 경우가 발생할 때마다 본인을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고쳐주느라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파고드는 수준도 남다르다. 남편의 관심사는 각종 기계(일명 얼리어답터)와 일본 애니, 그리고 피규어들이었다. 일명 ‘덕후’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난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일본 애니에 대해 ‘만화 영화’라는 단편적인 생각만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고 나서 ‘충사’, ‘R.O.D.', ’별의 목소리‘등  취향 저격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었고 영화 못지 않게 애니가 사람들의 관계나 세밀한 감정선을 담고 있고 유치하지 않으며, 깊은 감동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잘 알고 있는 분야에 관해 그에게서 전문가 뺨치는 설명을 듣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기계치였던 나는 어떤 기계든 작동 원리를 금방 파악하고 고장난 것들을 뚝딱 고치는 그의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아이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엔 과할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잊을 만큼 몰입하느라 속옷에 오줌을 지린 적도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게 학습과는 딱히 연관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주 상담사는 바로 그 점이 아이의 능력이라면서 아이는 ‘기술자 사주’를 갖고 있으니 아이가 재능을 보이는 부분을 빨리 파악해서 열심히 키워주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이 모든 것이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특징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아이의 사주에 기질이 들어 있고, 그로 인해 ADHD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니 어쩐 일인지 안심이 되면서도 조금은 서글펐다.

  

안심이 되었던 이유는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 내 탓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리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기질이라고 하지만 내가 좀 더 일찍 일을 줄이고 아이 교육에 신경을 썼다면, 그래서 남다른 아이의 기질을 빨리 파악하고 치료에 힘을 썼다면 지금보다는 수월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사주 상으로 결정된 특징이었다고 하니 내 손을 떠나 의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죄책감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어떤 짓을 해도 ADHD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인가, 라는 생각에 이르자 슬퍼지고 말았다. 태어난 연도와 날짜, 시간에 의해 결정된 거라면 후천적인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이미 그것은 아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었다는 뜻이니까. 이 얼마나 슬프고 가혹한 것인지.

  

예전에 아이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내가 시간을 애매하게 기억하고 있던 적이 있다. 1시 30분에 태어났다고 했더니 사주를 보시는 분이 내게 정확성을 요구하셨다.      


  “1시 30분에 딱 태어난 거예요? 이거 확실해야 해요. 30분 전이에요, 이후예요?”     


그래서 당시 병원에서 아이가 차고 있던 팔찌까지 뒤져 간신히 찾아낸 시간은 오후 1시 34분이었다. 그 시간을 말하자 상담자는 한숨을 조금 쉬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30분 이전에 태어났으면 대박일 사주인데, 30분 이후는 조금 힘들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자 아차 싶었다. 내가 좀 더 일찍 힘을 줘서 아이를 이른 시간에 낳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아이는 지금보다 좀 더 무난한 운명을 타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난 왜 더 열심히 힘을 주지 않고 숨을 고르고 있느라 4분이나 지체했던 것일까.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를 감출 수 없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우리 아이가 이렇게 힘들게 사회에 적응하며 살 줄 알았다면, 분명 나는 더 200% 힘을 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좋은 날을 받아 재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가 그런 운명을 타고난 것이든, 남편을 닮은 것이든 어느 쪽으로 생각한다 해도 나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꾸 결국은 ‘이 에미의 죄’라는 생각으로 귀결되려 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아이는 그 시간에 태어났고, ADHD 판정을 받았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듬뿍 주고, 물리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식을 먹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 뿐이다. 이제 약을 먹고 등교하면 아이는 식욕을 잃은 채 4시까지 쫄쫄 굶으며 배를 곯아야 할 테니. 그때 조금이라도 덜 힘들려면 아침에 밥을 든든히 먹어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짓는다. 칙칙칙칙, 밥이 완성되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에게 먹일 메뉴를 고민한다. 가만가만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고, 젖살이 올라와 있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춘다. 그것이 운명처럼 나에게 와준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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