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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연 Feb 08. 2022

아버지의 뒷모습을 아껴 담으며 1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

  임인년 설날 아침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세상에서 은빛으로 여울진 가로수의 눈꽃이 영롱하게 반짝인다. 아직 때 묻지 않은 도로 위를 살포시 미끄러지며,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길은 설경에 대한 아름다움과 눈길을 뚫고 강원도로 내려가야 할 근심이 교차되면서 눈과 머리는 제각각 따로 움직인다.   

   

 명절 연휴도 짧은 데다가 출근도 코앞이고, 집콕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유혹이 다분하다. 코로나 확산 세는 최고치를 기록하고, 강원도 눈길을 달리는 일은 위험천만하니 내려가지 않아도 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차례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이 아버지의 전화가 울린다.

 “아직 출발들 안 했지? 여기 눈이 많이 와서 안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려오지 말라는 소리가 반가워야 할 텐데 목소리를 듣고 나니 왠지 애처롭고 마음이 편치는 않다.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틀 내 정성 들여 바리바리 장만한 음식들이 갈 곳을 잃어 허무하다.

 노친네 혼자서 아까운 마음에 고기반찬 하나 없이 텅 빈 냉장고와 떡국 하나 없는 설 명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들로 내 마음은 재단질당하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내 다시 차를 되돌린다. 편의점에서 자동차 눈 제거 스프레이를 하나 장만하고 오디오북과 함께 강원도를 향한 눈 오는 날의 만반의 준비는 금세 끝이 났다. 내려가면서 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한다.

 사실 아까 출발했는데, 다시 돌아가기도 힘든 것 같아 그냥 내려간다는 말로 애써 너스레를 떤다.  

   

 못 내려간다는 말에 의기소침했던 아버지의 꺼져가던 목소리에는 생기가 돌고,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눈을 치워야 한다며 어느새 휴대폰을 뒤로한 채 제설작업에 들어가신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시골생활에 오매불망 딸자식만 기다리고 있는 노인의 그리움이 하나 둘 올라온다.


 생각해보니 많이 내려가야 일 년에 두어 번 그것도 명절이나 되어야 한 번 가는 것을 매번 이렇게 고민한다. 나의 안락함을 뒤로한 채 오늘은 아버지 당신을 생각한다.     




 의외로 고속도로의 상행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반면, 하행선은 시원스레 뚫려 있다. 하긴 이러한 기상조건에 굳이 강원도 길을 자처하는 차량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굵은 눈송이가 날리더니 어느새 세찬 눈보라가 되어 차와 씨름을 한다. 1미터 가시거리도 확보되지 않은 구간 모든 차량들이 깜박거리며 거북이걸음을 한다.

 휴게소 창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뻗은 한 손에는, 육각형 다채로운 결정체가 살포시 앉았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길 반복한다.   

  

 하늘에서 내려와 이내 사라지는 눈송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버지와의 지난날을 회상한다. 우리 부녀가 이렇게 상봉하게 된지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나에게 아버지란 늘 이방인 같은 존재였으며, 내 인생에 있어 단 한순간도 부성애는 날 찾지 않았다. 유년시절의 아버지는 잦은 해외출장으로 국내 거주가 어려웠고, 3대 독자였기에 타인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배려심 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집안의 뿌리 깊은 남아 선호 사상은 시대를 거슬러 나의 자존감을 한없이 무너뜨리고 피폐화시켰으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나는 경제적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      


 인생의 크나큰 시련으로 다가온 부모님의 교통사고는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어머니를 잃고, 장애가 생긴 아버지마저 3년간이나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불태워 소생시켰지만 그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들의 공으로 돌아갔다.     


 입원기간 동안 사업자를 빌려주다가 잘못되어 신불자가 된 이후에는 아들 명의로 모든 것을 돌렸다가, 어릴 적부터 돈으로 커왔던 아들은 잠적했다.

 그렇게 믿었던 아들에게서 버림받은 그는 이번에는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의지했고 그 또한 7년 만에 그녀의 배신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 그에게는 쓸쓸한 세월과 아픈 시절의 기억 그리고 경제적 궁핍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딸자식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심경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했던 나는 결국 병을 얻었고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 병이 들자 그동안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숨쉴틈 없이 살아왔는지 삶에 대한 회의가 들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마저 밀려들어 더욱 나약해졌다.


 그때 병실로 들어오는 백발의 구부정한 한 노인이 있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와의 병실 상봉은 정말 뜻밖이었다. 평소 연락도 잘하지 않았던 터라 나의 근황을 알기도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내가 출산을 했을 때조차 얼굴 한 번 비춘 적 없는 야속한 아버지였기에 그 놀라움은 나를 강타하고도 남았다.


 자식을 앞세우는 게 두려우셨을까? 아니면 갑자기 없던 부성애가 어딘가에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을까 하는 온갖 상상이 나를 집어삼키는 가운데, 나의 손에는 갑자기 무언가 묵직한 것이 쥐어졌다.


 주머니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꺼내진 노인의 전재산을 다 털어 넣은듯한 두툼한 돈다발에는 그동안의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서려있었다.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도망치듯 봉투만 쥐어주고 사라진 아버지의 첫 호의는 우리를 이어주는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아버지는 늘 어린 시절부터 받는 것에만 익숙했던 자기애가 너무나 강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한다. 뒤늦게 깨닫고 표현하고 싶었어도 너무나 멀리 돌아왔기에 다가서기는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집착이 결국은 우리 모두를 갈라놓았다.


 이제 와서 부정하긴 하지만, 혹여나 아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아마 지금도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또 내어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영원히 남동생이 돌아오지 않기를 나는 바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한 번쯤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갈망으로 허기진 마음을 채워야 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긴 세월 묵묵히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한 길을 걸어온 내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토록 갈구하던 아버지의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의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나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아껴 담으며, 이제는 갈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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