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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연 May 07. 2022

어버이날에 띄우는 천상의 편지

나의 어머니께


 눈물로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접은 지 어느덧 스무 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무던해질 만도 하지만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상실의 슬픔과 자책감이 내재해 있는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보면 시간이 흐른다고 상처가 회복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간 강산이 몇 번이고 변했을 20년의 세월, 켜켜이 쌓인 그리움과 회한(悔恨)을 말로 다 할 수는 없겠지만, 늘 기댈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언덕이었던 당신께 오늘은 그리움으로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지난달 집 근처 수로 양쪽으로 하얗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벚꽃 터널을 거닐며, 문득 어머니 생각에 더욱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벚꽃을 유난히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매년 벚꽃이 만개하면 제 손을 꼭 부여잡고  연분홍 꽃잎들의 향연에 저를 데려가곤 하셨지요.

 퍼프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꽃잎을 즈려밟으며, 주근깨 투성이 소녀 앤 셜리를 이야기하던 그 모습은, 경상도 아지매가 아닌 꿈 많은 문학소녀의 이미지로 기억이 됩니다.


 사소한 일상의 조각들로 행복의 퍼즐들을 하나씩 맞추어 나가고, 비단처럼 보들한 사랑을 주셨던 어머니는 행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지요.

 당신께 다하지 못한 아쉬움의 여한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꽃잎 사이로 쏟아져 내립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을 펼치며 어머니와의 추억을 소환해봅니다. 저 또한 따뜻한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제 자신을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원치 않는 불행이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경험해 버렸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 뜻하지 않은 가족들과의 갈등, 준비되지 않은 이별과 상실감 등 남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깊은 절망과 고통의 수렁 속에서 7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 냈습니다.


 불행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 언젠가는 멈추기를 매일같이 간절히 소원하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버티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제 곁에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기둥이었습니다.

 말을 하거나 움직일 수도, 그렇다고 뭐하나 입으로 드실 수도 없으셨던 어머니였지만 저는 지금도 기적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와 억압으로 결국 뇌사 상태도 아닌 어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 손으로 제거해야만 했던 날, 그 죄책감과 상실감은 지금까지도 견딜 수 없는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공호흡기 제거 후 3일 만에 조용히 눈을 감으셔야 만 했던 어머니, 그리고 힘이 없었던 제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는 깊어져만 갔습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장례식을 치르다 뛰쳐나와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흐느껴 울고 있을 때였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에 주변은 온통 가로등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그 처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밤하늘 위로 크고 빛나는 보름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노란 달빛으로 두려움에 떠는 저의 앞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보름달은,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저를 위로해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참고 견디며 살아갈 힘을 얻은 그날을, 아픔이 찾아올 때마다 상기합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로 인하여 2년 동안이나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번 달 보름 어머니 기일에는 새하얀 순백색 꽃들을 손수 장식해서 만나러 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렘이 함께 합니다.     

 너무나 그리운 어머니!

 천상의 그곳은 배고픔도 고통도 없는 평온함이 가득한 곳이겠지요.

 늘 선한 영향력을 나눠주셨으니, 이제는 편히 쉬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릴 적 기억되는 어머니는 보육원 친구들에게는 새 옷을 사주시고, 저에게는 늘 헌 옷만 얻어다 입히신 인색한 분이셨습니다. 철없던 그 시절 새 옷 사달라고 떼쓰던 저를 구슬리느라 애쓰던 어머니의 생각이 문득 떠오르며 이제는 그 서운함이 미소로 다가옵니다.


 봄이면 들로 산으로 쑥을 한 자루씩 캐서 온 동네 쑥개떡 잔치를 했던 후한 인심과, 어려운 일에는 늘 발 벗고 나서서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께 오지랖 넓다고 한 제 말은 그만 잊어버리셨으면 합니다.     


 어머니와의 이별 후 저는 너무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남들과 다른 출발선, 경제적인 압박과 늦은 도전에 대한 부담감이 저를 더욱 초조하고 절박하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문득 슬픔이 차올라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람들 속에서 밝음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너무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고, 제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며 여유를 가지고자 합니다.

 어머니!

 제가 몇십 년간 노력했지만 저는 아직 남들처럼 번듯한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다들 가지고 다닌다는 고급스러운 자동차를 소유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간병하던 그 시절처럼 병원 배선실에서 환자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주워 먹지는 않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고기도 사 먹고 맛집도 다닙니다.

 단 돈 몇만 원이라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후원금을 내며, 시간을 내어 봉사할동도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뿐인 외손녀는 몇 차례의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이겨 내고, 이제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어머니의 선한 영향력 때문인지 어려움에 처한 순간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온정의 손길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저도 서늘하고 막막한 겨울의 그늘에서 벗어나 따뜻한 봄날을 그려봅니다.  

 제 삶에는 유난히도 혹독한 겨울날이 많았으니 앞으로는 번성하는 여름과 거둬들이는 가을날이 더 많이 존재하리라는 긍적의 확언 또한 해봅니다.     


 푸르름이 가득한 가정의 달 5월, 그리고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계절에 이별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파하거나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행복은 결국 제 안에 있을테니까요.

 수시로 찾아오는 불행에 생명력을 잃어가기보다는 제 삶의 사소한 것에서 감사를 찾으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기 위한 연습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는 마음을 이제는 이웃에 대한 나눔과 선한 영향력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천상에 계신 어머니의 평안함을 다시 한번 기도하며, 어머니의 딸이 지혜로운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만날수는 없지만 제 마음속 은은한 달빛으로 언제나 온기를 전해주시는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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