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바지와 뱃살공주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평소처럼 옷장을 열고 이 옷 저 옷 뒤적거린다. 피트하고 예쁜 옷들은 옷장 구석에서 빛을 보지도 못한 채 고이 잠들어 있고, 중앙에는 고무줄에 스판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편한 옷들로 가득하다. 오늘도 밴딩 바지에 신축성 좋은 니트 하나 걸치고 출근을 한다.
최근에 구매한 바지나 스커트들은 정장이나 캐주얼할 것 없이 모두 허리에 고무줄이 들어있다. 막상 이 편안함을 겪어보니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넉넉하고 편안한 옷을 입으니 압박감도 없어 소화도 잘 되기에 음식은 자꾸만 들어갔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뱃살공주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되었고, 뒤에 있어야 할 엉덩이가 앞으로 온 것 같은 이 부자연스러움은 나의 정신건강까지 해롭게 한다.
‘나잇살’이라는 포장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켜보지만, 자존감은 떨어지고 건강에는 적신호가 들어왔다.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면 근육량이 줄어들고 신진대사량이 떨어져 살이 찐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복부 내장지방으로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뱃살 때문인지 허리 통증이 심해져 오후에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요추 압박성 골절로 입, 퇴원을 반복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던 시간도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다시 그 악몽이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심히 불안해하면서 말이다.
최근 들어 일 때문에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던 데다가 춥다는 핑계로 운동도 게을리했기에 선생님의 꾸중은 예견된 일이었다.
체중조절과 운동 그리고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도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다니, 그동안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고 안일하게 지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 있는 편안한 밴딩 바지로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것도 때때로 필요하지만, 이 여유로움이 지나쳐 관리되지 않는 나 자신이 되는 것도 경계해야 함을 느낀다. 고무줄 바지가 아닌 딱 맞는 옷으로 몸과 마음을 적당히 긴장시키고, 나날이 불러오는 뱃살이 늘어나지 않도록 조금은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우리의 삶도 달리고 쉬어 가는 시점이 존재하듯이, 옷도 지나친 편안함에서 벗어나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더 건강한 미래의 내가 되기 위하여, 옷장 한구석 잠자고 있는 피트 한 옷들에게 내일부터는 새 생명을 부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