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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연 Jan 11. 2022

싫어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맛동산’ 트라우마

 언제부터인가 ‘맛동산’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흠칫 놀라고, 마트 과자코너에서도 ‘맛동산’과 마주칠세라 애써 외면하며 자리를 재빨리 피한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맛동산’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울렁증이 시작되었다.  

 적어도 내가 그 일을 겪기 전까지는 ‘맛동산’이라는 것은 그저 맛있는 과자에 지나지 않았다.     


 고된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귀가한 나는 아이와 단출한 저녁을 차려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받을지 고민하다가 업무상 전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통화를 눌렀다.


 처음 들어보는 나이 든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맛동산이죠?

‘아니 맛동산은 마트에나 갈 것이지 전화기에 대고 왜 찾는 거야’라며 나는 구시렁거렸다. 아니라고 하자 그 남성을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윽고 얼마 되지 않아 또 전화기가 울린다.

”맛동산 아닌가요? “


 그다음부터는 미친 듯이 나의 휴대폰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맛동산’이 무엇이길래, 나는 그때까지도 상황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출처(pixabay)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어리둥절한 나는 전화 오는 사람들에게 대체 ‘맛동산’이 뭐냐고 물었지만 다들 대답을 안 해주고, 절절매며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뭔가 잘 못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는 출장으로 부재중인 남편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보이스 피싱이나 개인정보 같은 게 노출된 거 같다’는 남편의 말에 다음날 경찰서에 신고를 하러 가기로 한다.


 일단 다음날 아침까지 전화기를 꺼놨다가 출근을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젊은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 불구하고 모든 남성들이 미친 듯이 전화를 해 대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밤 새 두려움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온갖 잡스런 생각이 밀려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순간 나에게는 갑자기 ‘소심한 복수’란 말이 떠올랐다. 우리 업계에서는 워낙 갑질이 많은지라 원한을 품으면, 공중 화장실에 전화번호를 남기기도 한다는 속설이 있다.


 급전 필요하신 분 ~ 빚 갚아 드려요. ○○○ 010-×××-××××

 오빠(언니) 보고파요. 연락 기다릴게요. ○○○ 010-×××-××××     


 아! 갑질은커녕 늘 당하기만 했던 나인데, 설마 누가 나한데 그런 짓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의 나래는 끝도 없이 펼쳐지고, 다음날 경찰서로 향했다. 신고를 했지만 경찰서에서도 뾰족한 수는 없다며 폰을 해지하고, 번호를 변경하는 게 좋겠다는 답변뿐이었다.




 몇십 년을 사용해 온 폰번호인데 이제 와서 새로운 번호로 변경하려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전화는 끝도 없이 울려서, 업무상 급한 용건이 있을 때에만 잠시 켰다가 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해지하고 다른 번호를 받으려고 하던 중, 나의 이러한 고충을 들은 회사의 남자 직원들이 해결을 해 보겠다며 다가왔다. 어차피 해지할 생각에 별다른 기대도 없이 나는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그들은 휴대폰을 켜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서 사람들을 계속 설득하며, 정보를 추궁했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

 내 번호가 적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인터넷 야동사이트였다. 매니저 번호로 적혀 있다는데, 소위 불법 성매매 알선자로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제야 왜 그리 알려주지 않고 다들 전화를 끊어 버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순식간에 남자 직원들은 모여서 야동 사이트에 인증을 하고, 정말 내 번호가 있는지 확인까지 마쳤다. 참고로 음란물 사이트는 여성은 가입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그곳 매니저를 즐겨 찾는 사람과 우연히 연결이 되어 전화번호 수정을 요구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전화번호 끝자리를 잘 못 표기해 내 번호로 전화가 온 것이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에 나는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뒤로 전화가 감쪽같이 안 와서 전화번호를 변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좋긴 했지만, 온갖 두려움과 공포로 시달렸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맛동산’이라는 말에 난 경기가 난다.


 여전히 음지에서는 불법적인 것들이 성행하고, 또 한 그를 찾는 수요자가 그렇게 많음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 사건 이후로 나에게는 법인폰이 주어졌으나, 두 대의 폰을 관리하는 것 또한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가족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던 맛동산의 추억은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위에서 표기한 '맛동산'은 특정 브랜드를 비하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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