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편이 아닌데, 큰 아이에게 특별히 부탁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일어날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고운 말을 쓸 것을 당부한다.
큰 아이가 고3이지만 난 '공부해라'는 말은 거의 안 하고 매일 '일찍 자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다는 말보다 아프다는 말이 더 가슴 철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문은 '고운 말 써라'이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사용하는 언어들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내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어는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의를 주지만, 이내 돌아오는 답변은 이러했다.
" 엄마~ 내가 우리 친구들 중에서 제일 말을 예쁘게 해. 진짜루~ 글구 집에서나 그러지 밖에서는 안 그래. 내가 밖에서 얼마나 잘하는데~ "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해야 하는 거야! "
간혹 친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을 똥통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외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상대의 상황과 기분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온갖 오물을 상대에게 쏟아버리곤 한다.
어떤 이는 친한 벗일수록 귀한 찻잔처럼 여기는 이가 있다.
귀한 찻잔은 매일 쓰지 않는다. 귀한 손님이 오실 때에만 조심스럽게 꺼내 쓰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처럼 귀하게 대해야 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상대에게 상처 나지 않도록, 오래도록 곁에 두기 위해 아껴야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편안함을 가장한 무관심과 무신경을 경계해야 한다.
푸세식이 사라지면서 똥을 퍼 나르던 똥통도 사라졌듯,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똥통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귀한 찻잔처럼 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