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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Nov 09. 2023

드라마와 친해지는 나이가 되어간다.

나는 원래 드라마를 보지 않던 사람이었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 매운맛 범벅인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싫었다.


특히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는 불륜과 치정... 니 아빠가 내 아빠라는 콩가루 날리는 이야기, 하다 하다 이제는 김치로 싸대기를 때려야만 연예뉴스에 기삿거리가 되는 그 저급함이 싫었다.


주말 드라마라고 다를까... 재벌 남성과 가난한 여성의 비현실적이면서 클리셰 박힌 신데렐라 이야기가 정말 싫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듯, 고단하고 각박한 현실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멋지고 아름다운 배우들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이들이 있기에 드라마는 언제나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리도 드라마에 부정적이었던 내가 요즘 드라마와 친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드라마를 보며 자꾸 울컥울컥 거린다.

주책이다 싶다면서도 어쩌면 울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라고 더 기구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닐 것이다. 여느 한국인처럼 어려서는 대학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살았고, 졸업할 때 즈음엔 IMF 사태가 터져서 계획했던 유학이 무산되었고, 돈 벌어서 더 많이 공부하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아이 낳고 부양가족이라는 것이 생기면서부터 나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지루한 일상을 그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보통의 중년 여성일 뿐이다.


모두가 다 저마다 가볍든 무겁든, 작든 크든 그들만의 삶의 무게를 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기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주어진 '어른'이란 단어의 무게가 무거워서인지 언젠가부터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니, 울고 싶지 않아서 눈물샘 자극하는 영화나 TV프로그램은 멀리했다.


그런 나였는데... 요즘 자꾸 드라마를 보면 눈물이 난다. 


심리적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나약한 어른이 싫다. 나이가 들어서도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홀로 서기를 못하고 자녀들에게 의존하는 어른이 싫다. 아이들에게 나는 짐이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닌, 언제나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나무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아이들 앞에서는 늘 강하고 단단한 엄마이고 싶어 한다.

흔들리고 무너지고 싶을 때에는 아이들 앞이 아닌, 나의 반려인 앞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있어도 공식적으로 울 수 있는 때는 드라마를 볼 때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 아이들이 놀리기는 하지만, 그때만큼은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라는 '눈물 허가증'을 발급받은 순간인 것만 같다.


허가증의 발행인도 나이고, 수취인도 나이기에 내 맘대로 사용가능한 '눈물 허가증'...


어쩌면 사람들은 드라마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고 싶어서 드라마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도 드라마와 친해지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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