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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강 Dec 13. 2023

달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않는 것[신혼여행은 처음]

이게 어떻게 굴러가는가 싶은 차량과 함께 달리는 재미. 무섭진 않아.

참 이전 글에서 과속 단속에 두 번 걸렸다고 하고서, 범칙금으로 얼마를 냈는지  안 적었다.

렌터카 사무실에서 카드로 결제한 범칙금은 72 요르단 디나르이다.

지금 환율로 치면 13만4000원이다.

두 건 각각이 같은 가격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한 건당 6만7000원 정도 한다.

한국 과속 범칙금은 20km 이하가 3만 원이고 20~40km가 6만 원이다.

우리랑 비교해 보면 요르단 범칙금이 비싸다.

제한 속도도, 처벌도 모두 우리보다 엄한 편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랑 비교해서) 요르단이 차량 제한 속도를 낮게 책정한 데에는 이유가 여럿인 듯하다.

우선은 도로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다.

도로 폭도 좁은 편이라고 느낄 때가 잦았다.

도로 평면도 돌출되거나 파인 데가 많아서 너그럽지 않은 편이다.

요르단은 산유국이 아니라서, 원유에서 추출하는 아스팔트가 흔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를 받아낼 만큼 도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게, 속도를 제한하는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또 하나는 위화감을 차단하는 것이다.

거기는 100km로 달리라고 해도 여력이 되는 차량을 만나는 게 만만찮다.

연식이 돼 보이는 차량이 참으로 많다.

이게 굴러는 갈까 싶은 차량도 달린다.

이 나라에는 자동차를 제조하는 회사가 없(는 걸로 안)다.

모든 차량은 수입에 의존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게 한 두 푼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공산품 가격이 절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수입은 육로와, 항로, 해로 가운데 하나로 이뤄지는데 대부분 해로에 의존한다고 치고,

요르단 최남단 아카바항은 홍해의 맨 깊숙한 데 자리하고 있고,

아카바에서 암만까지는 차로 오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시설 철도뿐이다.

공산품이 비쌀 수밖에 없는데 이게 수입품이면 가격은 더 상승 압박을 받는다.

차량은 원래 한두 푼하는 게 아니잖은가.

그런데 요르단인 대부분은 차를 플렉스 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1인당 GDP는 4103달러(2021년 기준·대략 540만 원)이다.

차에만 쏟아붓기에는 소득이 넉넉하지 않다.

오래된 중고차를 많이 타는 건 이런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은 게 나의 뇌피셜이다.


그래서 한눈에 보기에도 인천에서 뉴욕을 일등석으로 다녀올 마일리지(약 30만)는 뺨을 때리는 주행거리와,

나의 처(30대)와 나이가 비슷할 듯하고,

단종한 지가 오래라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비싼 일당을 받고 출연하는,

그러니까 달리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역할을 할 법한 차량이 내 옆을 달리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내 앞을 달리던 현대차 그레이스. 정확한 모델은 모르지만, 2004년 단종한 것이니 최소한 20년은 된 차다.


이런 차의 오너에게 고속도로에서 100km를 넘어서 달리지 말라고 하는 건 야속하다.

마치 무심코 찾아간 여느 건물 계단을 오르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리카락조차 닿지 않을 높이에, '머리를 찧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붙여둔 경고문을 보고 좌절하는 나의 심정을 강요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산유국도 아닌데 기름도 아낄 겸 경제속도 60km(일반도로)~80km(고속도로)를 최고 속도로 설정한 것이라고,

나의 뇌는 피셜한다.


좌우간에 이건 어디까지나 여행자로서 느낀 내 단편일 뿐이다.

단편 하나 더 잇자면,

요르단에서 운전은 국내에서 운전하는 기분이 들어 재밌다.

만약에 접촉사고라도 났다면 차에서 내려 한국말이 튀어나올 정도다.

한 번은 신호등에서 신호를 대기하는데 내 차를 9시 방향부터 3시 방향까지 둘러싼 다섯 대 모두가 국산차였다. 

여기는 신호등조차 드문 곳인데, 마침 걸린 빨간 신호등(여기도 빨간 등에서 정차하고 파란 등에서 출발한다.)에서 한국차에 둘러싸이다니.

그런데 거기서만 그런 게 아니다.

이거 하나는 단언할 수 있다.

도로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를 만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외려 흔히 말하는 독삼차를 보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다.

미군 기지와 대사관저가 모인 고급 주택가가 아니고서는 도로에서 외제차를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찾아보니 한국과 요르단 교역에서 자동차 무역은 상당하다.

요르단 전체 중고차에서 한국차 비중은 38%(2015년)이고,

한국이 수출한 중고차 가운데 요르단 물량이 두 번째로 많다(2018년)고 한다.

괜히 만화 미생에서 장그래가 요르단에 중고차를 팔아보자고 한 게 아니었다.


암만 시내에서 리콜숍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기아차 세피아.

운전하는 재미를 더 돋운 건 오래된 국산차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걸 보는 게 여행을 하는 이유겠잖은가.

거기서는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국산차가 차고 넘친다.


아마도 현대차 엘란트라가 내가 본 가장 오래된 차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미국시장에서 판매되는 한국명 아반떼를 일컫는 게 아니다.

현대차가 1990년에 출시한 아반떼 1세대(당시는 엘란트라도 출시) 모델을 가리키는 거다.

엘란트라 후속모델 아반떼 2세대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 차도 1995년에 첫 모델이 나왔다.

차량 뒤편 제동등에 들어오는 램프가 불량한 눈빛을 떠올리도록 만들어서 기분 나쁘게 여기는 운전자가 많은 그 차다.

그래서 '아반떼를 만나면 늘 추월해 간다'는 게 그 시절 우리 아버지가 하던 얘기였다.

내 친구 금영이에게 미안하지만,

이 친구는 어려서도 못생겼고 지금 봐도 못생긴 것처럼,

세월이 흘러도 생김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추억의 아반떼를 뒤에서 마주하면,

짐짓 기분이 나쁜 척을 하고, 일부러 추월하면서, 속으로 재밌어 웃었다.

왼쪽의 빨간 차량이 세피아다. 오른쪽에 보이는 큰 트레일러를 끌고 간다.ㅎ 유튜브에 있는 세피아 광고에서 캡처했다.

기아에서 나온 세피아도 만났다.

세피아는 엘란트라랑 함께 1990년 출시됐다.

내 기억에 세피아는 허위 광고로 남아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fXgoJaRp88w)

아주 외진 지역을 달리던 트레일러가 고장 나서 도로를 막고 서버리자,

저 멀리서 답답해하던 세피아가 나타나서 트레일러를 끌어내는 게 광고의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세~ 피~ 아아아'하는 샤우팅으로 광고가 맺는다.

철없던 시절 이런 차를 가진 나라가 내 나라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그 세피아.

그걸 여기 와서 마주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갑자기 애국심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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