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이다. 한 겹의 이야기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부른다. 그 이야기들을 자신의 스타일리시한 스타일로 표현한다. 이야기가 먼저인지 눈부신 화면이 먼저인지는 따져봐야 할 정도다. 메타-영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런 제작을 통해 작가란 누구인가, 이야기는 어디까지인가를 질문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책을 읽는 소녀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이 책을 쓴 작가의 묘지를 방문해 고인이 된 작가를 만난다. 작가는 우리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이 이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알려준다. 작가는 1968년 주브로카를 방문해 과거 명성이 자자했던 한 호텔에 묶는다. 그는 그곳에서 호텔 주인 제로로부터 최하급 종업원에서 슈퍼 리치가 된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듣는다.
제로가 들려준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호텔 상급자였던 구스타프이다. 구스타프는 오랜 내연 관계로 있다가 사망한 마담 D으로부터 예술 작품과 호텔을 상속받는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위조, 추적과 살인 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일이다. 구스타프의 모험에 제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 보답으로 제로는 구스타프로부터 호텔을 물려받았다고 작가에게 말한다.
작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1985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소설을 펴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소설을 바탕으로 웨스 앤더슨은 영화를 제작한다. 마치 ‘스토리가 스토리를 품고, 비밀이 비밀 안에 깊은 비밀을 껴안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는 구스타프, 제로, 작가 그리고 감독을 거치며 감성을 쌓고 또 쌓는다. 그리고 그들을 차례차례통과하며 곱빼기가 된 감성은 폭포수처럼 관객들을 향해 한꺼번에 퍼부어진다.
영화는 상속을 저지하려는 마담 D 가족의 범죄 행각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시대적 배경 또한 영화 플롯을 복잡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는 주브로카라는 나라는 옛 오스트리아 제국을 뜻하지 않을까 한다. 나치에 의해 독일제국으로 병합된 나라는 수많은 망명자를 만들어냈고 어떤 예술가와 예술품은 박해의 대상이 된다. 이제 주브로카는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크레디트 말미에 이 작품이 스테판 츠바이크(1881~1942)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유태인이었던 츠바이크는 나치에 점령된 조국으로부터 도피해 세계를 떠돌다가 1942년 브라질에서 자살했다. 유럽 정신, 문화, 세상의 미래에 지극히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츠바이크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차라리 ‘어제까지의 세계’를 품은 채 세상을 하직하는 게 낫다고 결심한다. 츠바이크의 장편 '초조한 마음'과 몇몇 단편을 읽어봤는데 숨이 가빠질 정도로 읽기가 어려웠다. 불안 표현의 명인인 것 같았다. 순수한 사람이 어느 날 폭풍처럼 몰아치는 세계 속에 진입한다. 끌려 들어갔으나 자기의 것은 아닌 그 어두운 세계로. 영화 속 작가는 구스타프와 아무 접점이 없다. 그러나 그는 우리 관객에게 구스타프와 제로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분리하면서도 겹치는 위치를 발견하는 사람, 그게 작가가 아닐까 한다. 웨스 앤더슨은 스테판 츠바이크에게서 이런 작가적 태도를 발견한다.
‘에스터로이드 시티’(2023)에서도 웨스 앤더슨은 이야기들을 품은 또 다른 이야기의 겹겹을 들추며 보여준다. 처음 나오는 1.375:1 흑백 화면은 지금이 1950년대라는 걸 알려준다. TV 프로덕션은 콘래드 어프라는 작가의 작품 ‘에스터로이드 시티’를 극화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현실은 흑백으로, 제작 중인 극은 컬러로 등장하는 셈이다. 현실이 편안하다면 드라마도 걸림돌 없이 제대로 진행되겠지만 그런 순행은 감독의 의도와 거리가 멀다. 극 중 극을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터로이드 시티’라는 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커트되고 중도 포기될 듯 같다가 다시 살아난다. 처음부터 흑백 TV의 사회자는 에스터로이드 시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그런 이름의 도시가 없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런 연극이 없다는 뜻일까. 그것조차 모호하다.
스콧 피츠제럴드나 윌리엄 포크너도 영화 시나리오를 쓰곤 했다. 콘래드 어프도 영향력이 큰 작가다. 그는 배우 캐스팅도 좌지우지한다. 배우 존 홀이 갑작스럽게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 오기 스틴벡으로 캐스팅된다. 콘래드가 오디션을 보다가 존 홀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촬영 중에도 콘래드는 배경을 시각적으로 더 입체감 있게 디자인하도록 요구한다. 신적인 지위이므로 하늘이든 땅이돈 마음대로 바군다. 기차가 다가오는 먼 장면은 아마 2차원 그림일 것이다. 더 그럴듯하게 그려야 관객들이 속지 않을까? 본격적인 컬러 화면 시대가 열리면서 색을 제대로 표현하는 촬영 기계들이 등장했다. 신기술에는 웬만한 그림도 가짜임이 들통나 웃음거리가 된다.
1950년대까지 할리우드 작품들도 이런 식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스튜디오 촬영이 뻔한데 어쨌든 차가 달려야 하고 배도 폭풍우 속에 출렁거려야 한다. 의도하지 않은 해프닝과 실수들이 편집의 힘으로 명화가 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제작 과정 다큐를 보면 저 영화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놀랍기 그지없다.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과 같이 일한 사람들은 영화 촬영 현장을 카오스 그 자체였다고 회고한다. 카메라 맨, 세트가 늘 바뀌었고 주연 여배우는 애틀란타 대화재 촬영 신을 촬영할 때도 여전히 미정이었다. 심지어 감독도 네 명이나 교체되었다. 물론 가장 큰 공은 빅터 플레밍에게 돌아갔지만. 그렇게 보면 ‘에스터로이트 시티’는 클래식 영화에의 향수, 너무나 인간적인 시행착오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 영화 ‘에스터로이드 시티’는 그 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던 과학 공상물과 로맨스, 음모론 등을 이리저리 결합시키려 한다. 에스터로이드는 과거 운석이 떨어졌다는 도시이다. 이곳에 미래를 짊어질 천재 소년 소녀들은 체험 학습을 위해 모여든다. 이 와중에도 사막 한쪽에서는 핵실험으로 인한 버섯구름이 찬란하게 피어오른다. 방사능에 오염되건 말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난데없는 미확인 비행물체와 외계인도 깜짝 등장한다. 정부도 군대도 우왕좌왕이다. 그러나 외계인이나 핵 실험 같은 일은 미국 정부의 극비 사항아닌가. 사막 밖으로의 출입이 통제된다. 실제로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의 일부 구역은 1950년대에 UFO와 외계인이 출현했다 하여 소문이 무성했던 곳이자 빈번했던 핵실험 현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시기쯤 이곳에서 촬영 중이던 존 웨인이 훗날 암에 걸린 건 우연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이 영화의 모티브 중 하나였을 것이다. 50년대, 미국 정부는 비밀이 많았고 사람들은 하염없이 순진하다.
오기 가족도 사막 도시에 도착했다. 천재 아들이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오기는 아내의 화장 재를 싣고 여행 중이다. 몇 달 전 아내를 잃었지만 아직은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이곳에 밋지라는 여자도 도착한다. 오기와 밋지는 동병상련, 상처가 깊어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이들임을 서로에게서 확인한다.
그러나 일관성 없는 제작 환경 때문인지 존 홀은 자기가 맡은 캐릭터 오기 스틴벡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는 화면을 뛰쳐나가 현실의 흑백 세상으로 진입해 감독에게 질문한다. 마치 피조물이 창조자를 향해 존재 이유를 묻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오기는 건너편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 잠시 쉬던 한 여배우를 만난다. 그녀는 오기의 죽은 아내 역할을 맡기로 했다가 역이 삭제되어 출연하지 않게 된 배우다. 그녀는 삭제된 대사를 읊어 그의 이해를 돕는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또한 남편을 영원히 사랑하지만 오기는 오기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류의 대사를 읊조린다. 사랑,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물론 현실의 남과 여는 영화 속 인물들과 다르다. 연출가와 그의 아내는 진절머리나는 사이가 된지 오래다. 그들도 왕년에는 로맨스 영화의 남녀처럼 불타오르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지난 일이다. 그래도 오기는 밋지와의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랑은 언제나 솟아오르는 샘 같은 거다. 건조한 이 도시만 빠져나간다면 새로운 사랑이 기다릴 테지.
그러나 에스터로이드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작가 콘래드가 사망한다. 물론 그가 죽어도 영화는 계속된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사라진다해도 삶은 지속되는 것처럼. 콘래드 가족은 무사히 사막을 빠져나가고 오기는 밋지와의 로맨스를 시작하게 되겠지. 삶도 영화도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의 사운드 트랙 중 인상 깊었던 ‘You Can't Wake Up If You Don't Fall Asleep'(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처럼 피조물은 가상 안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단지 살아야 한다는 것만 알 뿐. ‘의미를 몰라도 지금 이대로 좋으니 계속 연기하라' 오기가 연출가로부터 얻은 대답도 이와 같다. '트루먼쇼'(1998)의 트루먼이 트루먼쇼의 감독과 만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처럼.
촬영이 끝난 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차 : 오기와 밋지는 사막 도시 에스터로이드에서 벗어났다.
2차 : 그 도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속 영화 ‘에스터로이드 시티’의 촬영이 종료된다.
3차 : 1950년대 흑백 시대로 돌아가 오기는 존 홀이 되고, 밋지는 메르세데스 포드가 된다.
4차 : 2023년 영화 ‘에스터로이드 시티’가 완성되어 존 홀은 제이슨 스왈츠맨이 되고, 메르세데스 포드는 스칼렛 요한슨이 된다.
웨스 앤더슨의 내레이션은 단일 평면도만으로 부족하다. 그는 이야기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또 내부 이야기로 계속 들어간다. 우리도 그 가상의 이야기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비밀을 숨긴 마트료시카 인형들이다. 안쪽 작은 인형의 내부로 들어간 그는 다시 하나 둘 이야기를 닫으며 현실로 돌아온다. 가상, 그 가상을 감싸는 또 다른 가상의 레이어들. 그가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궁금했다. 아마도 예술가, 어쩌면 창조자로서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야기, 그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어 열고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