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앱스타인(1953~2019)은 헤지펀드 매니저로 백만장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믿을 수 없게도 성범죄로 체포되었고 2019년 자살로 막을 내렸다. 세계적인 거물이다 보니 사망했을 때도 온갖 소문이 들끓었다. 남 부러울 것 없을 부자가 어쩌자고 치욕스러운 스캔들도 모자라 죽음에까지 이르렀을까. 어떤 선 안에서 멈추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너무 많이 가지면 타락한다는 건 바벨탑을 쌓은 니므롯이나 ‘변신 이야기’의 에리직톤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자주 듣는다. 에리직톤은 여신의 나무를 벤 후로 갈구 병에 걸린 사나이다. 많던 재산도 음식 먹는 데에 다 써버리고 그래도 배가 고파 나중에는 자신까지 잡아먹는다. 강하고 부유한데 자족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한다. 대부분은 멈추지 않고 더 큰 갈망에 시달린다.
바텍(1786)이라는 고딕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억이 강렬했다. 환상적인 풍광, 공포스러운 장면들, 죄 그리고 벌이 잊히지 않았다. 소설은 윌리엄 벡퍼드(1760~1844)가 21살 나이에 2박 3일간 썼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 자신이 지나치게 부유한 사람이라서 이런 생각에 골몰했겠지. 거대한 장원, 자메이카 사탕수수 농장, 3,000명의 흑인 노예들을 소유했다. 영국 평민 중 최고 갑부였다는 말도 있다. 이런 부를 소유했으니 값비싼 골동품이나 그림 수집, 여행 등 돈이 많이 드는 취미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예술 딜레탕트로서의 건전한 취향 외에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이 있었다. ‘바텍’을 읽다 보면 사치와 방탕의 극단을 달려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끝까지 가본 이들만이 알 수 있을 만한 심리적, 정신적 공허도 짙게 느껴진다. 소설의 칼리프 바텍은 벡퍼드 자신이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살다가는 지옥행이라고 두려워했을 것 같다.
벡퍼드는 고대 이슬람 제국의 한 칼리프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1708년에는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오리엔탈리즘에 기초한 옛이야기가 영어로 번역되었고 1764년에는 호레이스 월폴의 ‘오트란토의 성’도 출판되었다. 작가는 이국 취향의 환상 소설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그는 동방의 칼리프여야 이렇게 어마어마한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여겼을 테지.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돈, 음식, 여자와 같은 눈에 보이는 소유물만 필요한 게 아니다. 학문, 지식, 연금술 등 밑도 끝도 없는 심연의 세계 역시 필요하다. 칼리프는 그걸 다 가진 자, 마음대로 부리는 자이다.
바텍은 어린 나이에 아라비아의 왕이 된 인물이다. 부족한 것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다. 전임자들이 내세만을 생각해 삶을 옹색하게 꾸렸었다면 바텍은 지극히 현세적인 비전을 가졌다. 이 땅에 낙원을 꿈꿔 오감을 극대화한 별궁도 여럿 거느렸다. ‘영원히 배부르지 않은 향연’, ‘선율의 신전’, ‘눈이 즐거움’, ‘열락의 자극’, ‘환락의 피난처’ 등이 그 이름이다. 왕은 호색과 방탕, 그 쾌락에 몰두한다. 반면 학문과 지식, 신학 논쟁에도 관심이 뜨겁다. 무엇이건 그를 제어하는 한계는 없다. 이런 영향은 모두 어머니 카라티스로부터 왔다. 그녀는 그리스인답게 종교가 아닌 유사 과학을 숭배한다. 점성학, 오컬트, 마법 등이 그녀의 주종목이다. 이 마녀는 세상을 감각의 제국으로 물들인다.
어느 날, 신비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스스로 바뀌는 비문을 새긴 사브르를 몸에 지녔다. 바텍은 그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그 칼처럼 진귀한 다른 것들도 얻고 싶어 한다. 지아우르라고 불리는 이 존재는 악마 에미르의 부하다. 그는 칼리프를 ‘지하 화염의 궁’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한다. 그곳에는 누구도 가진 적 없는 보물들이 왕을 기다린다. '땅의 힘을 사모하고 신을 거부해야 갈 수 있는 곳'이라 한다. 칼리프는 당연히 그 궁으로 가겠다고 나선다. 그는 세상 최고의 권세를 갖고 싶으니까. 카라티스가 괴이한 종교의식과 희생제를 행한 후 출발 준비가 끝난다.
음식, 음악, 환관과 후궁들을 거느린 칼리프의 행차에는 거칠 것이 없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길은 험하고 짐승들도 공격하기 일쑤다. 그 와중에도 바텍은 누로니하르라는 소녀를 새 애인으로 삼는다. 각양각색의 환락이 뒤를 잇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을 막는 자는 웃음거리가 되거나 처참한 죽임을 당한다.
책을 읽다 보면 벡퍼드가 왜 고대의 칼리프를 주인공으로 삼았는지를 새삼 이해한다. 백성들은 왕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왕이 원하면 재물이든, 목숨이든 늘 스탠드 바이 해야 한다. 환관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말이 안 되는 명령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모욕적이고 혐오스러운 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뒤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갑작스러운 상전의 변덕으로 하루살이처럼 죽기도 예사다. 그러나 하렘의 여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녀들은 도구나 다름없다. 단지 왕의 수많은 정부 중 하나로서 존재하는 삶이라니. 고대나 중세 그리고 현대의 몇몇 권위주의 국가에서 여자들 교육을 금지한 건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게 함이다. 왕 하나를 위해 제국 전체가 돌아간다.
바텍과 누로니하르는 에미르가 다스리는 ‘화염의 궁’에 도착한다. 그들은 지상 최고의 힘을 갖는다는 희망에 부푼다. 그들의 사랑도 영원하리라. 그런데 이곳은 두 사람이 그리던 그곳이 아니다. 그토록 애써서 찾아온 여기는 지옥 아닌가. 이 소설이 잊히지 않았던 이유는 이 부분 때문이었다.
벡퍼드가 묘사한 지옥 풍경을 보자.
그 순간 똑같은 목소리가 칼리프, 누로니하르, 네 왕자, 한 공주에게 돌이킬 수 없는 무시무시한 선언을 했다. 그 즉시 그들의 심장에 불이 붙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들은 하늘이 준 가장 귀중한 선물인 희망을 잃어버렸다. 이 가엾은 존재들은 가장 격렬한 착란 상태에 빠진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바텍은 누로니하르의 눈에서 분노와 복수심밖에 보지 못했다. 그녀도 바텍의 눈에서 혐오와 절망밖에 보지 못했다. 친구로서 조금 전까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유지했던 두 왕자는 서로에 대하여 변치 않을 증오심에 젖어 이를 갈며 움츠러든 모습으로 뒤로 물러났다. 칼릴라와 그의 누이는 서로 저주의 손짓을 했다. 모두 서로가 두려워 무시무시한 경련을 일으키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들은 저주받은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으며, 그들과 더불어 영원히 줄지 않을 괴로움을 겪으며 배회했다.
벡퍼드의 지옥은 자기 자신을 향한 비탄과 가책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영원히 소외된다. 사람들은 서로를 피한다. 그들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마치 사막에 있는 듯 다른 이들에게 관심도 없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어디를 가나 끝도 없고 한계도 없는 곳. 암흑이 낮게 깔린 어두운 공간. 각자는 홀로 그 긴 허무의 공간을 유영해야 한다. 그는 지옥도를 묘사해 미래 문명의 인간 관계 단절을 통찰한다.
작가는 그 자신이 부유한 사람이었기에 돈, 기술, 권력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 한다. 그 맹목적 호기심은 허용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부자들, 최고의 과학자들, 테크니션들이 인간 문명을 다른 차원으로 바꾸려는 시대다. 정열, 야망에 사로잡혀 어떤 선을 넘어서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