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이라는 개소리
시크릿은 실천해 본 적도 없으며, 했으나 실패했다는 글은 아니다.
20대 때 시크릿이라는 책이 한창 유행했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십 년 이상 지난 지금도 종종 유튜브에 시크릿 책에 관한 영상이 추천되는 걸 보면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책인 듯하다.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었던 20대, 변화를 기대하며 자기 계발서를 읽던 시절 시크릿의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라 생각하는 대로 이루고야 말리라 다짐했다.
지금은 그 책을 갖다 버리고 없지만, 20대 후반 공무원 공부를 시작할 때도 그 책은 책장에 꽂혀있었다.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 없이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던 나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그 시기에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 탄수화물 부족이 문제였는지는 몰라도, 우울증과 강박증이 같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싶었다. 내 강박증의 주요 증상은 침투사고였는데, 어떤 나쁜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초기에는 강박증이나 침투사고와 같은 용어도 몰랐었고,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강박증도 불안 장애의 일종으로, 지금은 공황장애 같은 불안 장애가 흔한 증상으로 여겨져 당연히 치료받아야 하고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그런 병이지만, 그때는 그냥 내가 이상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덤덤하게 앓았던 병에 대해 글도 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때는 누구에게도 이 병을 들키면 안 된다 생각했다.
사실 이런 것이 병이라는 인식도 처음에는 없었다.
그 시기에는 이런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생각들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어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들은 그 시기에 내가 그런 병을 앓았단 사실을 모른다.
표시가 안 났던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들은 본인 이외의 남에게는 놀랍도록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고를 떨쳐버릴 수 없던 나에게 시크릿이란 책은 말도 못 하게 무서운 존재이며 이런 생각에 기름을 붓는 존재였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니,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들이 이루어진다니, 혹시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책 표지만 봐도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생각을 안 해야지 하고 생각하면 하루종일 그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잠시 멍 때리고 있다가도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가고 누군가 알아챌까 봐 두려워하는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암에 걸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괴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병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정신이 아프면 병원에 자유롭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 말로는 정신과에 다닌 기록은 취업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정신과 기록은 보험 기록에 남기면 안 된다며 비급여로 처리한다고 했다. 참 정성스러운 개소리이다.
병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한 일주일이 지나서 병원에 가게 되었다.
정신과의 문턱은 너무나 높았다. 아프면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집에 와서도 나쁜 생각들 때문에 쉴 수 없었던 나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 수면제를 먹고 약을 챙겨 먹으며 겨우 쉴 수 있게 되었다.
강박증에 대한 책도 사서보고, 여러 치료 사례들도 읽고 하면서 어느 순간 강박증은 사라지게 되었다.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침투사고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생각을 억지로 안 하려 노력하지 마라고 했다.
또한 강박증 환자에게 시크릿 같은 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증상만 악화시킨다고 했다.
그러한 글들을 읽으며 더 이상 죄책감은 가지지 않게 되었고 모두가 그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나에게는 저주 같은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기에 내가 느낀 그 책은 악마나 저주 외에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죄책감만 느끼게 해주는 떡진 빨간 인장 위에 S자가 쓰인 그 책은 갖다 버리게 되었고, 끌어당김의 법칙은 생각만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생각만으로 끌어당겨진다면 이 세상에 성공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는 책에 쓰인 것은 진리라고 생각했고, 베스트셀러인 책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되고 싶은 모습을 시각화하면, 본인이 되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실천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라는 것이지, 나쁜 생각까지 끌어당겨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므로 그렇게 될리는 전혀 없는데,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그때는 귀신을 본 것처럼 그 책이 무서웠다.
한동안 심각하지는 않지만 한 번씩 불안증이 찾아오기는 했다.
그때 제일 두려웠던 건 누군가에게 이런 증상을 들킬까 하는 것이었다.
십 년 이상이 지난 지금 밝혀진 것은 누구도 내 증상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직까지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점점 강박증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시크릿에 관한 영상을 자꾸 추천해 주어 힘든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자기 계발서는 이제 더 이상 읽지 않지만, 남은 인생은 후회보다는 성취로 채우고자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보고 행동하는 시크릿을 한번 해볼까 한다.
그 시기에는 절대로 강박증이 좋아질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크릿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것을 보니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