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넘으면 우리는 우울감을 달고 살아갑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밀려드는 우울감은 점점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맙니다. 우리가 우울한 이유는 각자 그 이유가 다르다고 하겠지만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바로 삶의 의미를 찾아 헤메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삶의 의미를 찾는 중년이라면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스승님, 저는 왜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있고 없고 가 결정되는 것이거늘 네가 태어난 이유 또한 그러하다."
"그렇다면, 제가 태어난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뿐이지."
"말씀이 너무 애매하여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 주세요."
"너는 네 앞에 있는 개미가 왜 태어났다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그냥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요?"
"그래, 맞다. 그렇다면 네가 태어난 이유가 저 개미가 태어난 이유와 다를 것 같으냐?
"저렇게 하찮은 벌레와 어떻게 인간을 비교하십니까?"
"그럼 인간 이 외의 모든 동물과 식물은 하잖기 때문에 삶의 이유가 없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냐? 그 이치는 도대체 무엇이더냐?"
"......."
"넌 네가 보기에는 인간이 우월하여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넓은 우주의 관점에서는 너와 네 앞에 벌레는 다르지 않느니라. 그저 태어나고 자기가 할 일을 찾아 열심히 일하다가 그냥 다시 땅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너는 인간이 태어난 이유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느냐? 오히려 그 반대이니라. 목적이 없기 때문에 너는 비로소 너만의 삶의 이유를 만들 수 있느니라. 만약 너 말고 그 무엇의 존재가 너의 삶의 의미를 정해 놓았다면, 넌 태어나 살아갈 이유가 무엇이 있느냐? 그 이유란 게 있다면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거 아니더냐?"
"그래도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인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려무나. 너는 아직도 네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의 존재가 널 이곳에 보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다면 넌 단지 그 사명을 따라가는 조정말에 불가한 것 아니냐?"
"........"
"삶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넌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란다. 널 이곳에 보낸 것은 너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모든 것이 의미 있고 자유롭고 아름다울 수 있지. 인생에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네가 답이 되어라. 너의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저 감탄하거라."
"하지만 제 앞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흔들리는 것은 너의 삶이 아니라 네 마음이다. 네 마음이 흔들린다면 넌 분명 그 무엇에 집착하고 있을 뿐, 이 세상은 그저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니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를 이곳에 보낸 것은 바로 너 자신이다. 그리고 너는 곧 이 우주 이니라. 그러니 집착하지 말거라. 너의 지금 상황은 단지 이 우주의 법일 뿐이니라."
"그럼 스승님도 저도 모두 우주가 보냈고 결국 모두가 하나란 말씀이신가요? 제 삶의 여정은 그저 제가 만든 것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왜 이곳에 저 자신을 보냈나요?"
"그 이유를 지금 매 순간 너의 삶이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 함은 그저 그러함일 뿐이다. 지금 이대로가 모두 완벽하다. 그저 네 앞에 펼쳐진 법에 따라 마음 내어 살면 그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