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회사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아침 회의 때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워 창문을 닫아야만 하는 곳,
외근을 다녀오면 사무실에서 수십 마리의 개들이 나를 반기는 곳,
눈이 오면 넓은 잔디마당에서 개들과 함께 뛸 수 있는 곳,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와 함께 컸고 개를 너무나 좋아했던 난 안내견학교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안 뒤로 이곳에 입사하겠다고 의지를 다졌었다. 인절미 같은 리트리버들을 매일 보면서 같이 일하고 돈도 벌 수 있다니 이보다 천국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운 좋게 입사에 성공했다.
입사 첫 주쯤이었을까, 탕비실에서 물 한 잔 마시려고 하는 나에게 한 선배가 말을 걸었다.
"들어온 지 일주일쯤 됐나? 어때요? 재밌어요?"
"아 네! 강아지들 너무 예뻐요!"
"그쵸 이쁘죠. 하지만 여기서 일할 때는 우린 '개'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돼요."
개보다 사람이 먼저인 건 당연한 거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강아지가 좋다는 마음으로 입사한 나에게 이 말은 작은 충격이었다. 선배는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가 아닌,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라는 점을 짚어주신 것이다.
안내견학교에서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었다. 개를 비롯한 동물에 대한 애정도 있어야겠지만, 그전에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필요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위에 개에 대한 사랑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내견학교 직원들은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주관하는 흰지팡이 교육이나 점자 교육을 받기도 하고, 시각장애인 관련 세미나에도 종종 참석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보다는 안내견을 먼저 보고 만다. 안내견이 눈에 띄는 것은 이해하지만, 안내견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도 함께 있음을 생각했으면 한다. 안내견학교에서 늘 부르짖었던 안내견에 대한 에티켓들-예를 들면 부르지 말 것, 먹을 것을 주지 말 것 등- 은 모두 안내견과 함께 걷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한 번만 생각한다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다.
내가 안내견학교에 있을 때는 '개는 안돼요~'라며 식당 출입을 거부당하거나, 택시를 탈 때 '첫 승객이 개라니 재수없다'며 거부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대형마트에 갔다가 출입 거부를 당했다는 뉴스가 났을 때도 댓글창에는 출입을 허락해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가득했다. 안 그래도 큰 개는 무섭다는 인식이 가득했기 때문에 검은색 털을 가진 개들은 가급적 지양했다.
지금은 안내견에 대한 인식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안내견은 당연히 출입 가능하다고 알고 있고, 이제는 훈련견이나 퍼피워킹 중인 강아지들도 흔쾌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물론 법적으로 훈련견 및 퍼피워킹 중인 강아지도 안내견과 같이 어디든 출입이 가능하다.) 검은색 안내견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요즘은 또 다른 에티켓이 요구되고 있다. 워낙 SNS에 일상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지나가는 안내견을 발견하면 몰래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다. 이 역시 안내견을 보고 시각장애인은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안내견이 전국에 60~70마리 정도밖에 없다 보니 안내견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테고, 그러다 보니 SNS에 올려 인증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사진을 몰래 찍어 본인 SNS에 올린다면 기분이 어떨까. 시각장애인이 아닌 정안인이 걸어간다 해도 몰래 사진을 촬영해서 올릴 것인지 묻고 싶다. 정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SNS에 올려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안내견과 걷고 있는 시각장애인을 만난다면, 안내견만 보지 말고 둘의 파트너십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함께 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