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떠난 마음 두 번은 쉽다.
다행히도 사직서는 모든 결재 라인을 통과하지 못했다.
아마도 일주일 내로 사직서가 수료되었다면 처음 각오 그대로 퇴사를 맞이했을 텐데.
어느 정도 충동성이 내포된 사직서는 결국 내 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주변 동료들에게 퇴사한다고 여기저기 소문도 나고 작별인사로 아쉬움도 나눴는데 이게 무슨 반전인가.
체면은 둘째치고 일단 지금 업무에서 떠난 정을 다시 데려오는 게 문제였다.
일도 넘치고 하기도 싫은데, 그 와중에 떠난 마음까지 다잡으려고 하니 힘이 배로 들었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 마음으로 돌아가서 원래부터 내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안된다. 몰입이 다 깨졌다. 이미 마음은 삼천포로 빠진 상태.
눈앞의 일만 쳐내고 있을 뿐이지 마음 없는 사람 인형이 일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집중하고 다시 정을 붙여보려고 발버둥 칠수록 부정적인 면만 더욱 부각돼 보였다.
부정적인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객관적인 데이터였다.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가장 크게 부각되어 느낀점은 바로 자부심이다.
자부심은 스스로 잘하고 인정을 받으며 영향력이 커질수록 함께 성장한다. 그런데 퇴사 결정을 내리고 업무 인계를 생각하니 당장 누구라도 이삼주만 훈련하면 비슷하게 할 수 있을 난이도였다.
그리고 사람이 대부분 하는 일이라 실수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일이 많을수록 실수가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다.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해결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하는데, 조직의 분위기는 언제나 질책이 먼저다.
정확한 보고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와 일이 더 커진 후에야 보고가 되는 이유는 지나치게 수직적인 구조에서 어린 친구들이 경직된 분위기에 위축되어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주원인이다.
솔직히 홈런타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런 사람은 이미 발 빠르게 더 나은 곳으로 떠났다.
나를 포함해서 남은 사람 대부분은 번트만으로 하루하루 연명해 온 것 아닌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대학 졸업 후 쉬지 않고 일하면서 직장 봉급만 11년을 넘게 받았다.
다른 영역에 대한 도전 또는 새로운 직장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줄 것이란 환상은 없다.
불평불만을 주저리 늘어놓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다는 사실도 안다.
먼저 사직서를 제출하고 다시 다니는 쪽으로 결정을 번복했을 때 팀장님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 실제로 발생했다.
"충분히 생각하고 다시 일하기로 결정한 것인가요?"
"네. 퇴사하고 나서 할 일을 생각해 보니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걱정되는 부분은 마음이 다시 돌아서서 퇴사한다고 하면 주변 동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이..."
"그런 일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는 개뿔.
마음이 분마다 흔들린다.
일단 출근한다. 그리고 열심히 한다. 이런 흔들리는 마음이 비치지 않도록.
마음이 분주하다. 괜찮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