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하루 8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면
사직서를 되찾고 이삼주 정도는 내가 다시 퇴사하겠다고 변덕을 부리진 않을까 모두 조심스럽게 나를 대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전과 같은 회사에서의 일상이 찾아왔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잘 처리된 일들을 보면서 작은 성취감도 맛보고 동료들과 점심식사하고 꿀맛의 퇴근까지.
직장생활이 이 문장처럼 술술 알아서 지나가면 좋겠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려운 업무와 때로 사람들과의 마찰로 힘들 때가 있다.
무엇보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그중 상사와 의견이 다를 때 참 어렵다. 아랫사람으로서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어렵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다.
그렇지만 언제나 맞춰야 하는 사람은 나로 정해진다.
직장인이 급여를 받는 이유 중 업무와 별개로 사내에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상급자의 지시에 어느 정도 복종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상급자의 지시가 정말 아닌 것은 없으니 대부분 아닌 것 수준이라 '아니다.' 말을 못 해봤다.
업종을 불문하고 내방하는 고객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 직원을 한두 명이라도 더 뽑으면 그 효과는 비례한다.
그러나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한 명 한 명의 직원을 늘리는 비용이 부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일시적이라 매출이 줄어든다면 이미 늘어난 고정비를 줄이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신규 고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번호표를 뽑고 오랫동안 기다리는 고객이나 그런 상황에 정해진 인력(人力)의 속도로 일하는 우리는 언제나 답답하다.
일반적인 직장생활,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안에서는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보단 수동적으로 일하는 환경이 대부분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태도로만 보면 능동적이며 활발한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생산성이 확연하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책임감이 더 큰 부분 같다.
출퇴근 1시간
오전 오후 4시간씩 8시간
점심시간 1시간
하루 10시간 이상을 회사와 관련해 시간을 쓴다.
직장인이라면 일하다가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나 지금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 질문을 모든 직장이 하는 것처럼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자기 일에 만족스럽지 않거나 일이 힘들 때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퇴사 결정을 불러온 게 아닌가 한다.
퇴사를 결정하기 전 그리고 그 결정을 다시 번복해서 다니고 있는 지금도 저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뒤따르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만약에
"하루 8시간, 아니 회사를 위해 사용하는 10시간 이상을 '내 일'로 가득 채울 순 없을까?"
나는 회사의 상품이 고객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다. 고객의 만족은 어디까지나 상품 그 자체가 가진 매력이 대부분이다.
창구에 앉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빠르고 정확한 고객응대 그리고 약간의 상냥함.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고 내게 다시 돌아왔다.
계획대로라면 지금 쯤 가족들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서 회복과 새로운 계획을 세우느라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 같은데...
현실은 현실이다. 일단 지금은 몸을 움츠리고 다른 기회를 엿봐야지.
"오직 나를 위한, 내 거 하는 시간..."
이런 고민의 시간이 퇴사 결정 전엔 선행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이번 퇴사를 번복한 결정은 참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