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마음으로 학생들 체력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운동장에 앰프도 끌고 와서 진행용 USB를 꽂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체력검사를 위해 준비된 음악과 신호가 있어 편리하게 아이들의 체력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오면서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며 한 아이가 얘기했고 또 다른 아이도 "저도 다리가 아파요"라는 것이다. 정말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애써 준비한 게 있는데 측정을 앞둔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몸이 아프다고 하니 난감하기 이를 때 없었다.
"그럴 거며 교실로 돌아가!" 나는 더 이상 수업을 하는 게 의미 없어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화가 나가 시작했다. 나는 한참 아이들의 나태한 태도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교감선생님이 아이들과 꽃을 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화가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체력측정을 위해 열심히 뛰는 아이들에게 더욱 열심히 뛰라고 소리 질렀고 도중에 그만두는 아이에게 뭐 하는 거냐며 다시 뛸 것을 강요했다. 거의 수업시간 전부 나의 큰 소리로 운동장이 울려 퍼졌다.
"죽어도 이곳에서 죽어!"라는 말까지 했으니 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뒤통수가 뻑뻑해지고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황폐해질 대로 갈 때까지로 열을 냈다. 그렇게 수업은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화가 풀리지 않았다. 즐겨 먹는 믹스커피도 한잔 마셨다. 소용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평소에 화를 잘 내지만 이토록 화가 오랫동안 지속된 적은 드물다. 집에 와서 한 밤 자고 나면 괜찮으려나 일찍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보통 화가 나면 하룻밤 지내고 나면 기분이 싹 풀린다.
그때 집에 돌아온 집사람이 나를 보고 무슨 일 있냐고 물을 정도로 나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응"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이 체육활동을 하기 싫어 발목이 아프다고 하여 내가 화낸 것은 어쩌면 교사로서 숙명과 같은 행동이다. 그런데 화가 아니라 나는 분명 분노를 했다. 그럼 왜 그렇게 분노하게 되었을까? 그 순간 멀리서 꽃을 심고 있던 교감선생님이 떠올랐다.
교감선생님은 사실 나와 한 살 선배로 대학교 때부터 잘 알고 있던 분이다. 이럴 때 보통 악연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시절 대학교도 군대문화가 있어 남자선후배는 깍듯했으며 얼차려와 구타가 만연했던 시절이다. 특히, 나는 그 선배에게 참 많이도 맞았다. 그래도 인연이라고 나는 또다시 현직에 나와 만났을 때 반가웠다. 그때의 악연은 이미 접고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체육관에 구입하려는 노래방이 있었다. 웬 학교에 노래방이 필요할까 싶지만 작년에 학교행사를 하면서 몇몇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방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선생님의 의견이 있어 체육관을 담당하고 있는 내가 추진하게 되었다. 예산도 확보되었고 어떤 제품을 살지 검색도 마쳤다. 오직 결재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유독 그 교감이 반대를 했다. 나는 왜 사려고 하는지 이유를 두 번이나 찾아가 설명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무조건 안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예산은 있으나 집행할 수 없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너무도 아쉬운 마음에 선생님들과 차라리 노래방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이 나와 합판과 같은 나무 재료를 살 예산을 따로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마음이었다. 두 번이나 설명해도 안된다는 교감의 말에 사실 섭섭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내색 않고 웃으며 얘기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괜찮지 않음이 느껴진다. 그러니 그 당시 내가 분노를 했던 이유가 가만히 생각에 잠겨보니 이해가 되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감선생님과 잘 지낼 것인가? 아니면 내가 가야 할 길을 가야 할 것인가? 너무도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나의 교직생활이 이것 때문에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학교 관리자에게 나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그냥 관리자를 멀리하고 나의 세계 안에서만 있었다. 그랬더니 관리자들은 더욱 나에게 모질게 대했으며 그럴수록 나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예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책에 있는 이야기이다. 직장인인 사람이 어느 날 자기의 상사가 항상 개인적이고 회사에 불필요한 일을 시켜서 짜증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스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부분이 있었다.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만약 상사가 시키는 일이 부당하다고 하여 거부했을 때 돌아오는 모든 일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묵묵히 그 짜증 나는 일을 하고 편하게 사는 것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았을 때 내게 오는 모든 수모를 감수할 수 있어야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젊은 시절 그 책을 읽고 상사에게 부당한 일은 거부하는 게 옳다고 여기고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나에게 오는 불이익은 내가 책임을 져왔다. 지금의 내 모습이 거절했던 결과라고 생각 든다.
오늘 다른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어 그 노래방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난 사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모두들 왜 그런 일 가지고 신경 쓰냐고 했다. 나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고 그 이유를 찾고자 터널과 같은 길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우연하게 찾게 되었다. 나는 사실 노래방의 설치가 아이들도 위하는 거지만 바로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좋아한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나훈아나 조용필이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음악이 좋았다.
아마도 그 노래방 설치가 그런 나의 마음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다 갑자기 안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허하고 답답했던가? 해결책이라고는 선생님들과 노래방을 만들기로 했는데도 사실 마음이 다 풀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면 나 스스로 하면 되는 일인데 편하게 하고자 노래방을 구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해결책을 아주 쉬운 길이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스스로 음악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