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된다. 사실 나의 어머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여느 부모님과 다르다란 것을 나는 중학교 시절 알게 되었다. 쉽게 넘어가는 일도 어머니 만은 그렇지 않았고 항상 문제가 되었다. 되도록이면 부딪치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지만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바람에 바람 잘 날 없었다. 다행히 누나가 중재를 항상 해줬는데 각자 분가하여 나이 들어가 보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
대학생 시절이었나 어느 날은 내가 무슨 이유에서인가 나의 주장을 세게 한 날이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내가 또 접고 말았다. 계속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항상 어머니 말씀에 잘 따르는 좋은 아들이 되고 말았다. 결혼 후에도 똑같았다. 아버님이 불의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나니 어머니의 크기는 나에게 참 절대적인 큰 존재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에 있다 보니 참 답답할 때가 많고 저번에 노래방 건도 그렇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재권자가 NO 하면 절대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나의 사업을 해보는 것이다. 사실 내 생각이 아니라 우연하게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책 속의 그분도 직장에 다니다가 해외구매대행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그렇다 보니 직장생활도 즐겁다고 했다. 나는 '바로 이거다!' 느꼈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더 구입해서 읽다 보니 어느 정도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에 어머니와 밭일을 같이 하다 나도 구매대행이란 것을 공부해서 해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처참했다. "직장생활이나 잘해, 절대 구매대행 같은 것은 하지 마!", "예" 잠시 후 또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예"라고 대답했는데도 몇 번이나 나에게 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다. 며칠 후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도 또 확답을 받으려 그건에 대해 물으셨다. 지금 돌이켜 봐도 속이 답답해지고 새벽에 잠에서 깬 후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답답한 마음에 집안 청소와 세차를 했다. 청소와 세차를 하면 복잡한 마음이 싹 사라진다. 세차를 하면서도 나는 그 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나이가 벌써 50살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에게 뭔가를 하라, 하지 말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내가 반항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반항이라는 말을 하는 나이는 예전에 지났다. 반항이란 말 그대로 에너지가 넘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냥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가고 싶은 것이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항상 느끼는 부분이 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게 나는 좀 답답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일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그만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께서는 이 부분을 모르는 거 같다. 오직 직장생활에 충실하면 뭐든지 잘 되는지 안다. 내가 읽은 책에서 이 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다. 이미 평생직장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고.
저번 편에 노래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1년 전부터 아이들을 위해 행정실과 상의해서 예산도 준비하고 활용 방법도 열심히 준비한 노래방 사업이 결재권자의 말 한마디에 좌초되고 고뇌하였던 부분이다. 속이 얼마나 답답했고 며칠 아니 몇 주를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끝내 포기했을 때의 자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의 결정을 보아야 한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구매대행이란 것을 계속할 것인가, 모르는 길이지만 직장생활도 즐거워지고 좌충우돌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그냥 포기하고 말 것인가, 오직 지금까지 한 직장생활에서 만족하며 계속 그 속에서만 보호받고 내 생각이 아닌 관리자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울며 살 것인가?
어차피 인생은 본인 몫이다. 내가 항상 아이들을 가르칠 때 쓰는 표현이다. 얼마 전 어느 여학생이 달리기 검사를 하는 날인데 "엄마가 힘들다고 뛰지 말래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뭐? 그게 말이 돼 네 친구들은 모두 달리는데 네 엄마가 이곳에 있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열심히 뛰어!"라고 말했다.
마치 그때의 그 여학생과 나의 상황이 똑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부모님이 나서서 하지 말라고 한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살라고. 나는 그 당시 오직 그 여학생을 위해 이야기한 것이다. 누군가 나를 위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힘이 들더라도 보람 있고 진정 나를 위한 길이라 느껴진다.
이 글을 쓴 지 며칠이 지났고 고민도 그만큼 더해봤지만 결론은 똑같다.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가까워 오는 어버이날이 있어 약간 죄송스럽지만,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올라온 글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어느 젊은 부부가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자식도 없는데 젊은 남편이 정관수술을 한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분명 속상해하실 텐데도 해야겠다고 하며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지 않냐.
물론, 그분은 나도 지탄하고 싶다. 세상에 결혼식도 안 하고 같이 살며 자식도 없이 정관수술?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어쩌려고 그런 결정을 함부로 하는가? 내가 그 부모라도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그분이 했던 말은 참 의미가 있다. 부모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라고 나도 나의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대신 학교를 다녀주고 싶다'란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그럴 순 없다'였다.
이번 일은 나에게나 어머니에게나 사실 큰 변화이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께서 싫다는 일은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고 있었다. 유튜브 활동도 그렇고 교원단체 가입도 그렇다. 그렇다고 내게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해 주었다. 예전에도 쓴 글에 이런 일이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서 하반신 마비가 된 젊은 남성이 답답한 마음에 해인사 큰 스님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그런데 큰 스님은 절대로 일반인이 만날 수 없다고 해서 며칠이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사정이 딱해 관계자의 도움으로 큰 스님이 만났는데 무엇 때문에 나를 찾아왔냐는 큰 스님의 질문에 젊은이는 "부모와 나는 무슨 관계가 있냐?"는 질문이었다. 즉, 본인이 다친 상황이 부모의 잘못에서 기인했는가의 질문이었다. 큰 스님은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다른 인생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이해 가기도 했으나 내가 살면서 아니라고 느낀 적이 더 많았다. 사람이 살면서 부모 말을 잘 듣고 커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고 가르침 받아왔고 커왔기에 나는 그 큰 스님의 말이 머릿속으로 이해되지만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이번 일을 겪고 보니 큰 스님 말이 맞는 거 같다.
지금 잠깐 마음은 아프지만, 부모와 자식은 다른 운명이고 그걸 인정해야만 스스로 독립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