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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Jan 01. 2022

안녕, 스물넷

#단어이야기

* 단어 '스물'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 스물은 새로운 시작과 설렘이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 새로운 터전, 새로운 공부. 레드카펫을 밟으며 평화의 전당에 들어섰을 때, 그곳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보았을 때, 그리고 처음 본 친구와 우산을 나눠 쓰고 지하철 역으로 걸어갔을 때, 그 모든 순간은 마치 꿈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무엇이든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패기가 가득했던 그 시절. 대학교 1학년이라는 단어의 풋풋함과 어설픔, 그리고 아직은 실수해도 된다는 안도감은 그런 마음을 동조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가진 것 하나 없는 대학생이었지만, 그냥 그 자체, '스물'이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곤 했다.


나의 스물 하나는, 그러한 어설픔에 살짝의 익숙함이 더해진 시기였다.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미숙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무엇인가를 아주 조금은 안다는 익숙함이 더해져 있었다. 학교 구조를 조금 더 잘 알았고, 친구들을 조금 더 잘 알았으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조금의 미숙함에서 벗어나 성숙한 척을 하려던 시기, 그때가 나의 스물 하고도 하나였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방황을 했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세상을 어설프게 알았기 때문에 그러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본래 모든 것을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많이 고생을 하는 법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정답 없이 '끝없는 오답'만을 찾으며 살았던 시기. 어설프게 세상을 알아서 혼란스럽고도 어지러웠던, 나의 스물 하나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스물둘. 나는 스물두 살에, '하나'일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이상한 중압감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몰랐고, 그래서 더 방황하기만 하던 시기였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했으며,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럴수록 더욱 혼란해져만 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스물둘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물론 그 다짐은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문득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스물둘은 한 마디로, 이제 막 세상의 초입길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21년, 나의 스물셋은 그런 나의 '길'을 찾은 해였다. 물론 아직도 불안하고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방황하는 것'과 나의 갈 길을 찾은 상태로 방황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나에게 '셋'이라는 숫자는 정확히 갈림길에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갈 곳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디론가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불안해했다. 초입길에 서있는 것과 갈림길에 서있는 것은 조금 많이 다른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재촉했다.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남들보다 뒤처져있다는 조바심으로 끊임없이 달려온 해였다. 나에게 스물셋은 진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나이 같았다.


이제 나는 '스물넷'이다. 불안하던 스물셋을 지나 도착한 스물 하고도 네 살. 나는 올해의 나에게 무엇이 될 수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사히 스물넷을 완주하고 다섯으로 가자. 아무도 아프지 말고, 누구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고, 행복한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그게 올해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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