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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서 올라 부산을 가로 지르다

금정산 종주

by 장순영

부산은 해운대와 광안리, 태종대 등 바다를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산으로 관심을 돌리면 금정산을 화두로 삼게 된다. 부산광역시와 양산시의 경계이자 낙동강과 수영강의 수계에 있는 금정산金井山은 역사적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호국의 산으로, 대표적인 호국사찰 범어사와 국내 최대의 금정산성이 축성되어 있다.

금빛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산꼭대기의 황금빛 우물 속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산 이름을 금정이라 지었는데, 격렬한 풍화작용으로 인해 화강암으로 형성된 기암절벽이 절묘하게 노출되어 부산이 자랑하는 명산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였다.

삼국유사에 ‘금정 범어金井梵魚’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 시대부터 금정산과 범어사를 연관시켜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범어사는 서기 67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경남 양산의 통도사, 합천 해인사와 더불어 3대 사찰에 꼽히며 많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범어사 초입의 등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176호)도 금정산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육중한 산세


예전 부산에서 근무할 때 동래온천과 범어사에서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산성을 따라 산책하듯 다닌 적이 있었다. 마음 한편 금정산에서 백양산까지의 종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일하는 외사촌 동생도 만날 겸 새로 개통된 고속열차 SRT에 몸을 실었다. 출발지인 서울 수서에서 잠깐의 눈 붙임 사이에 부산까지 도착했는데 아직도 아침나절이다.

양산행 버스를 타고 양산 다방리 삼거리에서 내린다. 지도를 살피며 검토했던 대로 대정 그린아파트와 극동아파트 샛길로 들어서자 텃밭이 나온다. 금정산 종주의 양산 쪽 들머리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걸으며 스트레칭을 겸한다. 도로가 끝나면서 제법 가파른 경사로가 이어지더니 봉분 하나가 나지막한 봉우리를 지키고 있다. 또 하나의 봉우리를 올랐다가 내려서자 석산리로 내려가는 갈림길과 임도가 나온다.

양력 2월 중순이라 철은 겨울이겠지만 남녘 부산인지라 이미 봄이 뿌려지는 기분이다. 임도가 끝나는 질매 쉼터를 지나도록 춥거나 덥다거나 하는 기온 체감은 느끼지 못한다.

계단을 올라 바위에 서자 양산의 한산한 아파트 지역과 낙동강 하구가 저만치 아래에 있고 천성산 쪽으로는 아직 연무가 걷히지 않아 뿌옇게 흐려있다.

오르내림을 거듭하며 점차 고도를 높이고 정상과의 거리를 좁혀간다. 철제 계단을 올라 바위가 촘촘히 박혀있는 일명 철계단봉(해발 726.6m)에 이르니 아래로는 여전히 낙동강이 길게 뻗어있고 넓은 산자락 끄트머리에 주봉인 고당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고도 거친 암릉을 지나서야 옅은 안개마저 지워져 시야가 밝게 트인다. 부산 도심이 눈에 잡히는가 싶더니 남해가 드러난다. 금륜사와 은동굴로 갈라지는 길에서 제대로 된 정상석이 세워진 장군봉(해발 734.5m)에 다다르자 커튼이 젖혀진 양 조망이 완벽하다. 고당봉으로 향하는 장쾌한 능선에 봄기운까지 완연하고 산객들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금정산의 육중함이 너끈히 드러나는 중이다. 전형적인 화강암 산지임을 알 수 있다. 너른 억새군락의 장군평전을 지나 볼록 솟은 봉우리에 다다르면 갑오봉(해발 720m)이라는 자그마한 정상석을 보게 된다.

다시 숲길을 벗어나고 너른 바위에서 숨을 고르며 하늘 릿지를 감상하다가 두 차례 험한 바윗길을 조심조심 오르내리게 된다. 고당봉을 전면에 두고 걸으며 마애불 갈림길에 이르자 더 많은 산객을 보게 된다.

56. 고당봉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인다.jpg 고당봉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인다


금정산 주봉 고당봉(해발 801.5m)에도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부산광역시와 양산시의 경계면에 있는 고당봉에 오르자 부산 일대, 특히 김해 국제공항과 광안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고당봉 아래 황금색 물고기가 노닐던 금샘은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고 생명의 원천이자 창조의 모태인 다산을 기원하는 성소였다고도 전해진다.


“그들은 아직 이곳 부산에 있을까.”


함께 근무하며 희로애락까지 함께 했던 젊은 날의 그들을 떠올리자 그 세월이 그다지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내려다보는 부산은 군 시절 이후 처음으로 집을 떠나 생활했던 곳이었다.


“일부는 저기 어딘가에 참하게 살고 있을 거야.”


고당봉에 서서 잠시 부산에서의 옛 추억을 더듬다가 꾸불꾸불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선다. 북문에 이르렀다가 돌계단을 밟고 오르막길을 올라 넓은 터의 원효봉(해발 687m)에 이르러 동해로 눈을 돌린다.

원효봉은 금정산 동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먼저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이라 불렸다. 금정산성 4 망루 위쪽에 자리 잡아 동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전망대 역할을 하는 봉우리이다.

원효봉의 김유신에 관한 설화를 적은 팻말이 재미있다. 김유신 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할 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랜 시간 서 있다가 그 상태에서 소변을 보았는데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이 땅딸보 소나무는 오랜 세월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름을 뽐내고 있어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는데 어느 바위인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육중한 산세, 봉우리의 불교적 명칭뿐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산성길이 수도권의 북한산과 비교하게 된다.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후 당시 경상감사의 진언으로 숙종 때인 1703년에 축성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1972년부터 2년간에 걸쳐 동·서·남 3문과 성곽 및 4개의 망루를 복원하면서 둘레 1만 7336m, 높이 1.5∼6m로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이다. 이민족의 침략을 저지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금정산성은 동래산성으로 불리다가 고쳐 부르게 되었다.



천 마리 거북과 만 마리 자라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다


의상봉에서 지척의 무명봉을 바라본다


원효봉에서 이어지는 봉우리가 의상봉(해발 640.7m)이다. 4 망루 위쪽 봉우리로 늠름한 자태의 호랑이가 웅크린 채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에 비유한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막기 위해 한참 동안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끝내 승부를 내지 못하고 두 봉우리로 변해 위쪽에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虎峰이 되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용봉龍峰이 되었다. 이 두 봉우리를 합쳐 용호봉이라 부르다가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도심을 건너 장산이 보이는데 금정산, 백양산과 함께 부산의 3대 명산으로 꼽는다. 4 망루를 지나 산성 길을 따라 걸으며 풀숲 사이로 노출된 바위 군락을 보고 절묘하게 축조된 3 망루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절벽 위에 얹혀 있듯 자리한 3 망루는 돌출되게 이어진 암반 사이의 경사면에 축대를 쌓아 만든 망루이다. 나비 바위와 부채바위 주변의 천구 만별千龜萬鼈, 즉 천 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 자라 형상을 한 바위가 어우러진 자연경관의 조화로움이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바위들 너머로 의상봉과 고당봉, 원효봉, 갑오봉, 계명봉 등 금정산 봉우리들에 봄기운이 피어오른다.

3 망루에서 1km가량 떨어진 동문에서도 도심 경관에 시선을 담게 된다. 부산시민들의 접근성이 좋아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는 동문은 전망도 탁월하다.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동래부사 정현덕은 두 성문을 완벽하게 지으려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의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동문을 맡은 스승은 웅대하게만 짓고자 하였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까지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지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의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를 세웠다고 한다.

사람이니까 질투심이나 노여움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걸 오래 지니지 않고 자기 성찰의 계기로 전환될 수만 있다면 훌륭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동문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산성을 따라 대륙봉에 이르렀다가 길을 재촉하여 2 망루를 지난다. 2 망루에서 산성 길은 끝나고 능선으로 이어진다. 동문과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갈라지는 사거리에서 금강공원으로 향한다. 일단의 바위 지대를 지나 전망 공간에서 부산시가지를 내려다보고는 만덕 고개로 내려선다.

그리고 다시 쇠미산 전망대로 올라섰을 때는 많이 지쳤다는 걸 의식하게 된다. 간단한 행동식과 수분을 섭취하고 안간힘을 다한다. 공원 산책로나 다름없는 길인데도 좀처럼 힘이 솟지 않는다. 부족한 수면 탓에 더 그럴 거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남의 숲에서 평평한 능선을 따라 도착한 불웅령(해발 616m)에는 돌무더기가 수북이 쌓여있다. 비교적 가파른 산세인데 산정은 평탄한 편이다. 산정 가까이에는 풍화작용 때문에 부서진 자잘한 자갈들이 계곡을 이루어 애추崖錐를 형성하고 있다. 정상으로 향하며 보이는 산불 진화를 위한 방화선이 길게 깎여 흉측하게 보인다.

백양산白楊山 정상(해발 642m)에도 돌무더기가 탑처럼 쌓여있다. 다대포에서 끝나는 태백산맥 말단부에 솟은 백양산은 부산진구와 사상구, 북구의 경계를 이루며 우리나라 상수도의 시초가 된 동쪽 기슭의 성지곡聖池谷을 끼고 금정산과 마주하고 있다.

정상에서 애진봉 전망대로 내려가 부산 도심을 또 내려다본다. 산 아래의 낮은 지대는 많은 곳이 개발되어 시가지화 되었다. 산과 산을 끼고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은 서울이나 부산처럼 대도시의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김해시도 내다보고 헬기장으로 내려섰다가 능선을 따라 오른 봉우리가 낙동정맥 유두봉(해발 589.1m)이다. 여기서 낙동강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면서 완만하게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른 곳이 삼각봉이고, 다시 또 전망대를 지나 갓봉(해발 406m)에 이르렀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거듭해 오르내리는 중에 날이 저물고 있다. 부산 시내에서의 일몰을 산봉우리에서 바라본다는 게 살갑게 느껴진다.

갓봉에서 철탑을 지나 도심으로 나오자 이미 날이 어둑해졌다. 마중 나온 외사촌 동생과 모처럼 광안리의 불빛을 맞으니 긴 산행의 피로가 가신다.



때 / 늦겨울

곳 / 양산 다방리 - 석산리 - 질매 쉼터 - 장군봉 - 장군평전 - 갑오봉 - 마애불 갈림길 - 금정산 고당봉 - 북문 - 원효봉 - 의상봉 - 4 망루 - 대통령 바위 - 3 망루 - 동문 - 산성고개 - 대륙봉 - 2 망루 - 만덕 고개 – 쇠미산 전망대 - 불태령 - 불웅령 - 백양산 - 애진봉 - 유두봉 - 삼각봉 - 갓봉 - 개화초등학교 - 개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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