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종주
대구광역시 북부를 둘러싼 팔공산八公山은 정상 일대에서 뻗친 산줄기가 칠곡군, 군위군, 영천시, 경산시, 구미시까지 이어져 웅장한 산세에 계곡도 깊고 동화사, 은해사 등 사적이 많아 1980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최고봉인 비로봉 양쪽으로 동봉과 서봉이 날개 펼친 형상의 팔공산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고리 형태環狀의 산지를 팔공산맥이라고 하는데 대구분지의 북부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이 접하는 곳에도 동명의 팔공산(해발 1151m)이 있는데, 이 산은 산의 동쪽 안양마을에 있는 팔성사에 속한 여덟 개의 암자마다 성인이 한 사람씩 거처하고 있어 팔공산으로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팔공산의 명칭 유래는 보다 역사적이고 구체적이다. 후삼국 때 후백제의 견훤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 왕건이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하였다.
그때 고려 건국의 일등 공신 신숭겸이 태조로 가장한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왕건은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신숭겸과 김락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108m마다 한 개씩 세워진 150개의 이정표를 지나야
대구에서 입대 동기인 재오를 만나 회포를 풀고 다음 날 일찍 팔공산으로 왔다. 귀찮을 텐데도 재오가 동행해 갓바위 주차장까지 태워준다. 팔공산을 두 차례 다녀가면서 아쉬움이 남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시간에 쫓겨 여유롭게 산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하계휴가 중 갓바위에서 파계사를 종주하며 짙푸른 팔공산의 여름에 푹 빠져보기로 한 것이다.
“하산하기 전에 전화해. 한티재로 갈게.”
“아니야. 거기서 택시 타고 내려갈게.”
재오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걸 보고 바로 관암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콘크리트 길 우측의 숲길로 걸어 덕은사를 지나고 관암사에서 경내를 둘러본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경 읽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스님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옅은 운무가 고인 고요한 산사의 평온한 아침이다.
관봉(갓바위)으로 오르는 1365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1년 365일 찾는 명소라는 의미로 계단 숫자를 맞추었나 보다. 서울 청계산의 1240계단보다 훨씬 힘들다. 데크보다 높은 돌계단을 다 올랐을 때는 다리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관봉을 조금 앞두고 걸음을 멈춰 용두암과 용덕암, 그 건너로 환성산을 바라보자 그쪽으로도 아침 안개가 습하게 끼어있다. 관봉(해발 853m)에 들어서서 그제야 사람들을 보게 된다. 관봉 석조여래좌상 앞에 수많은 연등이 달려있고 그 아래에서 많은 사람이 절을 하고 있다. 여기 올 때마다 보게 되는 광경이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한 좌불상으로 머리에 갓을 쓴 것처럼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서 갓바위라고도 부른다.
갓바위는 예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약간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갓을 쓴 채 편안히 앉아 사람들을 보듬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예를 다해 절을 올리며 저마다 소원을 빌고 있다. 전국의 부처님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갓바위 스타 부처님 앞에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단다.
“제 소원은 안전하게 150이라는 숫자를 보는 것입니다.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팔공산 종주 능선에는 관봉부터 한티재까지 촘촘하게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관봉에서 80m를 내려오면 NO.001이라 적힌 이정표에 동봉까지 7.2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금 서 있는 1번 이정표부터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한티재 150번 이정표까지 16.2km이니 평균 108m마다 한 개씩 세워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길과 방향 안내엔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자칫 108 번뇌를 수행하는 고된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영천 일대와 대구시가지에 낮게 깔린 구름을 힐끔 쳐다보고는 2번 구조 목을 찾아 걸음을 옮긴다. 쇠 난간이 설치된 바위 구간을 오르며 능선 종주가 시작된다. 바위가 즐비하게 늘어선 암릉 길은 옅은 안개가 깔렸어도 주변이 트여 소소하게나마 바람이 불어준다.
“안개가 걷히면 무지 덥겠지만.”
북지장사와 선본사로 갈라지는 주 능선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둥근 바위 무덤 형태의 노적봉(해발 891m)은 바라만 보고 그냥 지나친다. 혹여 너무 늦으면 서울 가는 교통편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어 다른 때처럼 오지랖 넓게 방문할 수가 없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능성재 쪽의 완만해 보이는 능선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유별나게 힘이 부치고 더위에 시달리는 중이다
능선 왼쪽 아래로 보이는 팔공 컨트리클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5공 때 대통령 지시로 공사하여 6공 때 완공된 골프장이라는 걸 알고 더욱 화가 난다
.
“역시 그 사람다운 발상이야.”
명산의 턱밑까지 산을 깎아 골프장을 만든다는 전두환식 발상이 어처구니가 없다.
“라운딩 하면서 운동은 제대로 되겠군.”
가파르게 깎아 올린 필드에서 얼른 눈을 돌려 걸음을 빨리한다. 은해사 갈림길인 능성재를 지나 헬기장과 잡목 숲을 빠져나왔는데도 흉물스러운 골프장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느닷없이 그의 추징금 미납액이 떠오르고 너무 오래 산다는 생각까지 들어 미간이 좁혀진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서 좁고 한적한 오솔길을 빠져나와서도 한번 일어난 짜증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할 대자연에, 그것도 도립공원 자락에 골프장을 만들어 미래 세대에게 넘겨줘야 할 유산을 망가뜨리는 건 엄청난 범죄행위라는 생각이다. 자연은 현세대가 사는 동안 미래세대로부터 차용하여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세대의 소유지가 아니라 단지 점유하고 있을 뿐인데 점유자로서, 임차인으로서의 보전의무를 회피하고 마구 개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시대의 대통령이 앞장서서 자연을 훼손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니겠는가.
자연의 아름다움에 무관심하고 그 중요성에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생태맹生態盲 대통령을 두었던 걸 큰 불행이었다는 게 자책으로 이어져 바른재까지 보폭을 넓히고 만다. 동화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인 바른재에는 38번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으음, 38 곱하기 108은……”
관봉에서 4km를 조금 더 지나온 셈이다. 결국, 숫자와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팔공산의 육중한 산세를 꾸준히 접하면서 은해봉(해발 898m)에 닿아 더 가야 할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철탑이 무수한 비로봉을 빼고는 그 우측의 동봉과 서봉을 거쳐 파계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들이 두터운 초록에 덮여있다. 그런데 다시 진행하면서 짙푸른 팔공산의 여름을 즐기고자 했던 초심이 점점 시들해지는 걸 의식한다.
“이쯤에서 탈출할까.”
너무 덥다. 무척 힘들다. 차라리 비라도 뿌렸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자꾸 처지고 있다는 걸 의식하며 헬기장을 지나 삿갓봉(해발 931m)에 다다른다. 얼음은 이미 녹아버려 미지근해진 물로 목을 축이고 처진 기운을 부활시키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본다.
신령재(도마재)에서 돌아보니 관봉이 아득하게 멀어졌는데 이정표의 숫자는 겨우 48번을 표시하고 있다. 좌측 동화사로 내려가는 표식이 자꾸 마음을 흔든다. 동화사에서 이리 올라와 비로봉을 찍고 내려간 적이 있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인 동화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금산사, 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한 곳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임진왜란 때 절 전체가 불타버린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데 임란 당시 유정 사명대사가 승군을 지휘하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어젯밤 재오와 술잔을 기울여서인지 오늘따라 유별나게 힘이 부치고 더위에 시달리는 중이다. 내려섰다 올라서고 다시 또 올랐어도 줄지어 늘어선 봉우리들이 압박처럼 느껴진다. 처음 예정했던 코스를 줄여 탈출하고 싶지만 결국 신령봉으로 향한다. 신령봉(해발 931.5m)은 나무 둥지에 문패를 메달아 놓았다.
동봉이 가까워지면서 급경사에 바위 구간이 제법 거칠게 이어진다. 팔공산의 바위들은 대개 선돌처럼 세워져 있다. 숲을 비집고 곧게 세워진 바위들이 회전 구간의 열차처럼 늘어선 풍광을 눈에 담고 더 많은 바위가 군락을 이룬 염불봉(해발 1036.1m)에 닿는다.
염불봉에 올랐을 때는 대구 도심에도 안개가 많이 걷혔다. 발바닥 형상의 바위를 만져보고 저도 모르게 손을 코에 댔다가 멋쩍게 웃고 만다.
계단을 올라 미타봉이라고도 하는 동봉(해발 1167m)에 도착하였다. 갓바위 탐방안내소에서 9.3km를 왔고, 관봉에서 7.3km를 지난 거리이다. 정오를 넘긴 시간이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거리에 비해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가슴을 저리게 하는 숫자, NO. 150
요란스럽게 설치된 비로봉의 공군 관제탑과 무수한 통신 철탑들을 보면서 그리 향한다. 비로봉으로 가는 통신시설 옆으로 곱게 핀 야생화들에 눈길을 주고 막 지나온 동봉과 그 아래로 케이블카 상부 승차장에 눈길을 머문다.
비로봉에 예전에 없던 정상석(해발 1193m)이 세워져 있다. 비로봉에서 바라본 서봉과 가야 할 능선은 군사기지를 보는 것과 달리 유순하고 아늑해 보인다. 끈적끈적하게 콧잔등으로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지도 않았더니 말라붙어 소금기가 묻어나는 것만 같다.
“이열치열 아니겠는가. 땀은 땀으로 씻어내야지. 후유.”
수태골로 하산하는 삼거리인 오도재를 넘고 헬기장을 지나 오르게 되는 철 계단은 서봉으로 오르는 관문이다. 서봉으로 오르면서 비로봉과 동봉을 돌아보자 몇 번의 굴곡 심한 오르내림이 있었는데도 편하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봉(해발 1147m)은 삼성봉이라고도 부른다. 정상석 뒷면에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아래로 장군봉능선과 초록 틈으로 노출된 용바위가 멋지다. 사면에 바위들을 박아놓은 듯한 동봉과 그 너머로 갓바위능선이 아득하다.
팔공산 정상부의 비로봉, 동봉, 서봉의 세 봉우리를 삼존불에 비유하기도 한다니 팔공산은 역시 불전에 핀 향처럼 친불 성향이 강한 곳이다.
날머리 한티재까지 7.2km, 숫자보다 훨씬 멀게 느껴지지만, 그 숫자를 줄이려 걸음을 내디딘다. 칼바위를 비롯해 여러 형태의 바위들이 도열하듯 세로로 서 있는 게 흥미롭다. 파계봉으로 가는 등산로도 급경사 오르막에 암벽 밧줄 구간이 많아 꽤나 힘을 쏟게 한다.
톱날 능선을 지나면서는 우회로가 많아 오르내리면서 땀깨나 흘린다. 가마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려는데 눈이 감긴다. 잠깐이지만 졸다가 깨자 컨디션이 한결 나아진 듯하다. 파계봉(해발 991,2m)에서도 곳곳에 잠깐씩 눈길을 던지고 20여 분 내려가 파계재에 닿았다. 파계봉부터는 등산로가 순한 편이다.
“뭐야! 왜들 길을 막고 있어? 조폭들이야?”
의자 모양의 바위와 또 다른 몇몇 바위들이 모여 길을 좁히고 있다.
“아닌데요. 우린 가족이거든요.”
다시 보니 옹기종기 모여선 모습들이 무척 다복해 보인다.
“아, 네. 행복하세요.”
막내처럼 보이는 작은 바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들을 지나쳐 숲길로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고 등산로가 완만해 막바지 산행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NO. 150이 적힌 이정표를 보고 날머리의 마지막 계단을 내려섰는데 뿌듯하다기보다는 속이 저려 온다. 아직 오후 햇볕이 창창하게 뜨거워 더더욱 가슴이 벅차다.
“고생했어. 잘 견뎌내고 끝까지 잘 해냈어.”
숫자와의 싸움에서 이겨낸 자신을 스스로 위안하며 한티휴게소에서 내리막 고개에 눈길을 머문다. 한티재 고갯길은 2007년 국토교통부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했다.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도로가 드라이브코스로 적격이란 생각이 든다.
도상거리 18.2km를 걷는 오늘 산행의 역주행, 즉 여기 한티재에서 시작하여 갓바위 탐방안내소까지의 산행을 흔히 팔공산 한갓 종주라고 하는데 시간이 나더라도 결코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팔공산은 다시 찾아올 거야. 그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면 좋겠군.”
때 / 여름
곳 / 갓바위 주차장 - 관암사 - 관봉(갓바위) - 노적봉 - 은해봉 - 삿갓봉 - 신령봉 - 염불봉 - 동봉 - 비로봉 - 서봉 - 가마바위 - 파계봉 - 파계재 - 한티휴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