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에 빠진 아이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이때 어린 사마광이 돌멩이를 주워 들더니 있는 힘을 다해 장독에 던졌다. 독이 깨지고 물이 쏟아지면서 겨우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
장독에 물까지 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어른들은 아이를 잃을 뻔했던 것이다.
작은 병에 손을 집어넣어 한 움큼 사탕을 움켜쥔 원숭이가 손을 빼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사탕 몇 개를 놓으면 손을 뺄 수 있는데도 한 번 손에 들어온 건 절대 놓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는 원숭이는 움켜쥔 사탕이 아까워 자기 손이 올무에 걸린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놓아야 함에도 다른 하나까지 쥐려 하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염일방일拈一放一의 고사는 북송 때의 정치가이자 사학자이며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전해진다.
옹기를 깨뜨려 친구를 구한다는 뜻의 파옹구우破甕救友라는 숙어로도 전해져 왔는데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고는 잘못된 틀을 고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더 오래 전인 한나라 때 반고가 지은 ‘한서漢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나라 가신인 가의가 황제인 한경제에게 물었다.
“독 안에 든 쥐를 잡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독을 깨지 않고는 잡는 게 쉽지 않겠지만 쥐를 잡으려고 독을 깨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군.”
가의는 당시 간신 무리들의 극심한 황포를 진언하기 위해 독 안에 든 쥐를 예로 들었었다.
나라를 좀먹는 간신들을 배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지라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그들의 전횡을 모른 척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걸 피력했다.
어질고 현명한 경제는 가의의 충정을 귀담아듣고 측근들의 전횡을 뿌리 뽑아 태평성대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쥐 잡으려고 그릇을 깬다는 투서기기投鼠忌器다.
살다 보면 이처럼 염일방일 혹은 투서기기처럼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일거에 양득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작은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덜 손해 보는 선택, 더 귀한 것을 취하는 선택이 현명한 처세일 것이다.
주식도 오르고 부동산도 오르고 금리도 올라 모든 부문에서 투자수익을 챙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사소한 이해득실에 연연하면 큰 부자가 되기 전에 소중한 귀인들까지 멀어진다. 작은 이득에 악착같은 이가 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서 과연 상호 간의 관계나 의리에 연연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