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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Dec 17. 2021

팬데믹을 대하는 그의 자세

영화 <LOG IN BELGIUM>


집 앞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들, 친구 또는 남편과 함께였다면 무난한 영화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보는 건데 뭐,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영화 말고 그냥 딱 꽂히는 영화를 봐야지.

그렇게 <로그 인 벨지움>이 눈에 들어왔다.


'캄캄한 영화관에 혼자 있으려면 무서울 텐데...'

영화 시작 직전까지 예약자가 아무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으스스하면 중간에 나와야지.'

잠시 고민하다 표를 끊었다.

영화 시간에 맞춰 입장하니 84석 상영관 내부에 정말 나 혼자였다. 괜스레 주위를 한 번 쓱 둘러보았다. 불안한 시국에 사람 많은 것보다 , 뭐. 잠시 후 조명이 꺼지고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화면을 가득 채운 LOG IN BELGIUM 텍스트. 이내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LOG IN BELGIUM>

#유태오 #팬데믹 #벨기에


영화는 한 호텔에서 시작된다. 유태오는 촬영을 위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인해 촬영이 중단되고. 하루, 이틀.. 9일, 10일.. 15일. 벨기에 낯선 호텔에 고립된 그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LOG IN BELGIOUM>은 그 기록의 결과물이다.


나는 유태오 씨의 빅 팬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를 택한 계기는 순전히 제목의 힘이다.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나라, 벨기에. 해외여행이 사실상 금지된 현 시국에 벨기에가 배경인 영화라니. 나는 "엔칸토 - 마법의 세계"보다 "팬데믹 속 벨기에의 일상"이 더 궁금했다 보다.


해외 촬영 중 코로나가 터졌고 모든 스태프들은 돌아가고 국경은 봉쇄되고 나만 남았다. 극한 외로움과 공포를 겪으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이어지는 작업을 하다가 보니 배우 유태오의 1년 에세이 형식이 되었다.

“영화는 나에게 감수성이 통한 가상의 세계야.” 배우 유태오는 촬영차 방문한 벨기에에서 급작스럽게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하게 된다. 유럽의 스태프들은 모두 육로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고 록다운으로 항로가 막힌 상태에서 태오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호텔에서 본의 아니게 자가 격리를 하게 된다. 15일간의 록다운, 소중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고독,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에 대한 갈망, 인생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기록으로 담은 배우 유태오의 감독 데뷔작이다.

- 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중



<LOG IN BELGIUM>

 #안트베르펜 #손 #멜랑콜리


영화는 7할이 호텔 안에서 촬영되었다. 프레임 없는 침대 위에서, 텅 빈 냉장고 앞에서, 아무도 없는 GYM에서. 주인공은 내내 홀로 외로움, 불안과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내면의 '나'와 마주하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고민하고 교류한다. 배경의 2할은 귀국 후 서울의 모습이다. 배우 유태오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자며 사족처럼 붙였지만 그러기에 분량이 지나치게 커진 느낌이다.


실상 내가 기대한 벨기에의 풍경은 1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오가 '내적 자아'의 모습으로 호텔 방에서 뛰쳐나와 춤추며 누비던, 적막한 안트베르펜의 밤거리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영화 관람 후 며칠이 지나도록 안트베르펜 시내의 조각물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 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내 생애 그 손을 보러 갈 날이 올까?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중

결국 며칠 후 도서관에 들러 벨기에 여행책을 빌려왔다. 잘려나간 '손'은 안트베르펜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잘린 '손'을 발견할 수 있다 한다.



<LOG IN BELGIUM>

#현재진행형 #팬데믹


60여분의 상영시간이 끝났지만 바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벨기에'가 들어간 제목에 끌려 보게 되었지만 마냥 가볍게 볼 영화는 아니구나. 본의 아니게 철저하게 고립된 상황. 어찌 보면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 배우 유태오는 기록을 시작했고 끊임없이 질문했으며 누군가와 공유하고 토론했다. 그렇게 사소하고 무수한 점들이 얽히고설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었다.


각본, 연기, 감독, 음악까지. 시도인만큼 완벽하진 않았지만 배우 유태오의 도전과 열정에 박수쳐 주고 싶다. 1년이면 마무리될 줄 알았던 시간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이 상황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LOG IN BELGIUM> 엔딩크레딧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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