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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Jan 05. 2022

우리 가족의 암호

뭘 해도 귀여운 둘째

지난여름, 코로나 상황에 남편은 재택근무하는 날이 많았다. 오전업무를 마치고 점심식사 후 3,40분가량의 여유 시간. 남편, 아이들과 함께 집 앞 산책로로 나섰다.


30분을 함께 잘 걷고 돌아오는 날도 있지만 아이 둘 중 한 명이 씩씩대며 뒤돌아 쌩하니 가 버리는 날도 있었다. 굳이 산책로 화단 턱을 따라 걷는 둘째를 따라 하다 나동그라진 첫째 덕에 5분 만에 돌아와야 했던 적도 있으며(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가), 어느 날은 한 여름에 털양말을 신고 나오는 둘째와 또 어느 날은 요상한 종이를 안경삼아 쓰고 나오는 첫째와 모르는 사이인 양 멀찌감치 따로 걷다 온 적도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면 무슨 일이던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무엇이 이들을 막을쏘냐



 Joe아버님과  Joe어머님


그날은 산책 대신 자연드림으로 장을 보러 갔다.

점심에 냉장고를 털어 볶음밥을 해 먹은 지라 저녁 찬거리도 사고 아이들 간식도 직접 고르라 할 참이었다.


"76,480원입니다. 조합원님이시죠?"


"네, 잠시만요"


남편이 휴대폰 앱을 열어 바코드를 보이고 신용카드를 건넸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결제가 완료되고, 털레털레 장바구니와 각자 고른 간식을 들고 매장 밖으로 나서는데 둘째가 묻는다.


"그럼 엄마는 조어머님이에요?"


"응?? 조어머님?"


"방금 아빠 보고 조아버님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엄마는 조어머님 아닌가?"

무슨 말인지 당최 못 알아듣는 내게 아이가 덧붙였다.


"아빠 보고 조아버님이라고 하셨어? Joe 아버님???"

핑퐁핑퐁. 탁구 치듯 우리는 같은 말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네, 조아버님."


"조아버님?"


"네, 조.아.버.님."


"조..?아..?버..?님..?"

.

.

.

.

.

HaHaHa, 유레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조아버님 조하버님 조하번님 조합원님!


조합원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아이는 아이는 '조합원님'을 '조아버님'으로 들은 것이다. 아빠가 조아버님이라고? 그럼 엄마는 조어머님인가? 하고 추측했고 본인 생각이 맞는지 물은 것이다. 지금에야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지만, 당시엔 그저 빵 하고 터졌다.




우리 가족의 장보기용 암호


얼떨결에 남편은 Joe아버님, 나는 Joe어머님, 그리고 아이는 Joe가 되어있었다.

둘째는 어린아이의 귀로 세상을 듣곤 한다.  브런치를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걸. 비슷한 에피소드로 웃었던 날이 참 많았는데 생각해 내려니 기억은 나지 않고 미간의 주름만 는다.

 

 긴~~~~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장 봐서 김밥을 싸야겠다.

둘째 덕에 생긴 우리 가족의 장보기용 암호.


"조아버님, 김밥 재료 사러 고고씽?"




*상단이미지: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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