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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Dec 31. 2021

"엄마아빠 연애이야기 해주세요."

열세 살 아들이 궁금해.


"엄마!!! 잠이 안 와요."


자정이 넘은 시각. 잔뜩 짜증 섞인 말투로 첫째가 나를 부른다. 밤 11시에 자러 들어갔는데 여태껏 잠을 못 이루고 있었나 보다. 침대 옆에 같이 누워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건만 5분 후 아이는 이불킥을 날리며 소리친다.

"그래도 잠이 안 와요." 

자장자장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자장가까 불러주었건만 아이는 답답하다며 드르륵 창문을 열어젖힌다.

"잠이 안 오는 거야, 대체." "방은 왜 이렇게 덥고!"

시시때때로 열이 뻗치고 잠이 안 오는 증상?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얘 사춘기가 아니라 갱년기야, 뭐야? 낮잠을 잔 것도 아니고 태블릿을 많이 본 것도 아니고. 키 커야 한다며 저녁 먹고 나가서 운동까지 하고  아이의 눈이 새벽 한 시 넘어서까지 말똥말똥하다. 아이의 짜증에 슬슬 녹초가 되어갈 즈음 생각지도 못한 말이 훅하고  들어온다.


"엄마 아빠 연애 이야기해 주세요."



아빠 엄마의 연애가 궁금한

열세 살 아들


... (3초 간의 정적)

... '어디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 '자식한테 남편 욕 하는 거 아니라는데.'

... (찰나의 고민들)


"그러면 오늘 잠 못 자. 다음에 얘기해 줄게, 일단 자자."


아이도 너무 늦었다 생각했는지 알겠다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바닥에서 자 보겠다며 내려간 아이는 옆으로 누웠다 바로 누웠다 꼼지락거리며 여전히 잠을 못 이루었다. 책을 읽어주면 바로 잠들 것 같은데. 드림렌즈를 착용하고 자는 아이라 불을 켤 수가 없다.

"음악 좀 들려줄까?" 

아이에게 물으니 저스틴 비버 Monster을 틀어달란다. "이 노래만 듣고 클래식 듣자. 가사 있는 노래보다 나을 것 같아." 라며 차이코프스키 곡들을 다음 차례로 지정해두었다. 한동안 팝송으로 영어공부를 했던 아이는 신이 나서 Monster을 따라 불렀다. '하.. 이러다 잠 더 확 깨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결국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가르릉 가르릉... 침대 밑으로 아이 고양이마냥 귀엽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에효, 드디어 잠들었구나. 자나 깨나 독서와 클래식은 옳다.


Photo by Jp Valery on Unsplash



궁금한 것이 없었던

열세 살의 나


니 아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넌 니 아빠랑 똑같아. 나보고 점쟁이들이 다 대단하데, 이런 팔자가 없다고... 어린 시절 내가 들으며 자란 말들이다.


"니 아빠 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네 아빠는 내가 상상도 못  멋진 남자였어.

라는 뜻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넌 니 아빠랑 똑같아."

너는 네 아빠처럼 괜찮은 어른으로 크고 있구나.

라는 말이었다면 얼마나 뿌듯했을까?


"점쟁이들이 나보고 대단하데. 이런 팔자가 없다고."

비록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린 잘 헤쳐나가고 있어라는 의미였다면 얼마나 힘이 났을까?


나는 왜 못 했던 걸까? 부모님의 옛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의견을 묻는 일들을 말이다. 아이들에게 고마우면서도 적잖이 당황스럽다. 부모의 역사와 연애가 궁금한 '아들'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좋은 거지? 관련된 책이 있었던가?... 일명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로 자라난 나. 글로 배운 육아의 한계인가 보다.


"엄마 어릴 적 꿈은 뭐였어요?"

"엄마는 어느 대학 나왔어요?"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은 뭐예요?"

"아빠는 오늘 반찬 중 뭐가 제일 맛있어요?"

"영민이 삼촌은 언제 적 친구예요??"

부모의 꿈과 생각을 묻는 아이들.  소박하고 작은 질문들이 차차 세상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뻗어나가길 소망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육아


어느덧 훌쩍 자라 나와 눈높이를 함께 하는 아이. 그 키보다 더 커져있는 아이의 내면. 아이가 커 갈수록 내가 예상한 행동이나 생각의 반경을 뛰어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진다. 기특하고 신기하다. 반면 내 안의 내면 아이는 여전히 상처받은 모습으로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구나.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연애 얘기해주세요." 여고생들이 교생 선생님께나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아빠랑 연애할 때 어땠어?"살가운 딸들이 엄마에게 팔짱 끼며 묻는 말인 줄 알았다.


"첫째 우리 연애 시절이 궁금하데." 

퇴근한 남편에게 말하면 어떤 반응일까?

오늘은 저녁식사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맛있는 안주와 맥주라도 미리 준비해 놔야 하나.


훅! 들어오는 아들들 덕에 가뜩이나 긴 얼굴이 더 길어지는 중 feat. 둘째가 만든 <절규>


Photo by Duong Huu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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