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동집이 보이는 골목에 들어서니 담벼락에 가지만 남은 담장이 넝쿨들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담을 끼고 돌아서니 이층 목조 건물에 허스름한 가개하나, 영문 필기체로 재즈바라고 쓴 글씨가 보였다. 잠시 멈칫거리다 가개 안으로 들어서니 환한 온열 선풍기가 눈부셔 상영 중인 극장에 들어온 거처럼 어두웠다. 천천히 가개안을 둘러보니 레코드판 튀는 소리가 날듯한 레트로한 분위기로 대여섯이나 앉을만한 작은 규모인데 어정쩡한 시간에 와서 그런지 아무도 없고 주인은 나를 보고도 고개만 까닥 그리 반갑지 않은 표정이다. 전면을 보니 오랜만에 보는 일본 위스키나 짐빔, 보드카 그런 병들만 보일뿐 고급 위스키나 꼬냑 같은 건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아래와 옆으로는 레코드판이 빼곡히 꽂혀 있다. 을씨년스러운 동경날씨에 움츠려드는 몸을 달래려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시고 있으려니 더티블루스의 진한 감성이 꿈틀거린다. 내친김에 위스키 한잔을 시키니 고양이 오줌만큼의 과자와 새알 쵸코렛 몇 알이 나왔다. 어느새 세 잔 째,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나니 뭔가 허전해 혹시 치즈 같은 거 있으면 달라고 했더니 그제야 배고프냐고 물으며 캐러멜 치즈 한 움큼과 카스테라 한 조각을 내왔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주인 얼굴은 젊었을 때 남자 꽤나 울렸을듯한 고급진 얼굴이었다. 긴자나 아카사카 쪽에서 봄직한 도도한 그런 느낌의 여인이다. 그 위에 기모노를 입힌다 생각하니 그 화려함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런 허접한 골목길 카페에서 재즈와 함께 지내고 있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니 가녀린 흰 손을 가진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굴곡진 그녀의 지나온 세월이 보이는 듯 만만한 팔자는 아니었나 보다. 시간이 지나며 그녀도 한잔하고 나니내게 이것저것물어 왔다. 약간 계은숙 느낌의 여주인, 그와얘기를 나누다 보니 츤데레 같은 면이 보였다. 좋아하는 재즈를 늘 들으며 이렇게 지내는 그는 행복해 보였고 나도 잠시 누릴 수 있는 이 시간은 당분간 내 기억 속에 남겨 두게 될 것이다.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잠시 꿈을 꾼 것 같은 그녀와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가개를 나서니 추위와 허기가 밀려와 아까 골목길 입구에 보였던 우동집으로 향했다. 따듯한 우동국물로 몸을 덮이고 기타 센쥬역으로 가는데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태국식당 라이카노가 보였다. 전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그런대로 본고장의 맛을 벗어나지 않는 괜찮은 식당이었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지만 대부분 여자 손님들로 가득했다. 낮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동네의 골목에는 밤에도 술꾼들로 왁자지껄했다. 술꾼들이 낮밤이 어디 있겠는가. 한잔 또한 잔속에 시름을 잊으려는 군상들의 모습에서 짠함을 느끼며 역으로 향했다. 신주쿠역에 내려 숙소로 갈까 하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간단하게 한잔 더할 생각으로 오모이데 요코쵸로 향했다. 일루미네이션으로 더욱 화려해진 신주쿠 밤거리 이런 날 눈이라도 좀 내리지 하는 사치스러운 생각 속에 도착해 보니 역시 야키도리 같은 안주 굽는 냄새와 연기틈에 담배 연기까지 섞여 안개처럼 자욱하다.그래도이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늘 와글거리는 광경이 즐겁고 편안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건 어릴 때 크리스마스 즈음 명동의 마산 아귀찜이 있던 그 뒷골목길 느낌 같아 그때 기분으로 일본 올 때면가끔찾게 되는 곳이다. 잊혀 가는 세월 속에 그 그리움이 남아 나는 내가 안 보이는 거리를 찾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신주쿠 버스 터미널 방향으로 걸어갔다. 내가 자주 머무는 JR 큐슈 블라썸 호텔 앞에 도착하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 누가 있었으면 한잔 더마실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운 마음 으로 호텔 안에 들어서니 정겨운 프런트맨의 인사가 취기를 살짝 날렸지만 곤방와 라는 그 인사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