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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15. 2021

현지 언어란 내게

베트남 이야기 10

딸들이 힘겹게 베트남 학교에 다닐 때 나도 베트남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에 살기로 했는데 아무 연고나 직업도 없는 상태에서 비자를 받으려면 언어 비자만큼 좋은 것도 없으려니와, 또한 베트남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더라도 먼저 기본적인 언어가 되어야 직원들과 소통도 되고 일을 주도할 수 있다는 지인의 충고에 따라 베트남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로 느껴졌다. 마침 집 근처에 모 대학교의 언어 학당이 있었다.


베트남어가 처음엔 만만했다. 일단은 영어의 알파벳과 중복되는 글자들이 많으니 거부감이 별로 없었다. 물론 영어와 매우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더라도 그동안 보고 들어왔던 기본기는 있으니 다른 언어보다는 훨씬 배우기가 좋을 것 같았다. 장점도 많았다. 중국의 한자가 우리나라 언어에 영향을 끼친 것처럼 베트남도 마찬가지여서 한자를 이용한 단어가 많았다. 각 나라의 언어에 맞게 발음 방법이 다를 뿐이지, 한자로 된 한국말과 비슷한 단어가 많았다. 예를 들어, chuẩn bị [쭨비](준비), học sinh [헙씽](학생), ký túc xá [끼뚝싸](기숙사) 같은 것들이었다. 머지않아 나도 외국어 하나쯤은 정복하겠군, 시원한 김칫국을 사발째 마셨다.

 

하지만 베트남어의 6 성조를 지켜서 말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똑같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성조에 따라서 전혀 다른 뜻풀이가 되니, 외국인이 성조를 못 지키거나 조금만 억양을 달리 해도 정말 엉뚱한 해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ma(마귀), má(볼), mà(그런데), mả(무덤/절묘한), mạ(도금하다), mã(외모/열등한)와 같은 경우이다. 가장 기본적인 베트남어 인사의 경우에도, Xin chào [씬짜오]를 발음할 때 [짜오] 부분의 억양을 내리면 '안녕하세요?'가 되지만, Xin cháo [씬짜오]를 발음할 때 [짜오} 부분의 억양을 올라가게 하면 약간의 억지를 좀 보태 '죽 좀 주세요.'라는 뉘앙스의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현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서로가 "예? 뭐라고요? 이해 못 했어요." 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상황이 비단 외국인과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같은 나라 베트남 안에서조차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이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기도 하고, 성조를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 두 지역의 사람들이 대화할 때 서로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적도 있다. 쓸데없이 이런 걸로 위로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현지인들의 말은 당연히 빠르기 마련이라, 말한 사람의 단어와 성조가 뭐였는지 연구(?)하다가 전체 문장을 놓치게 된다. 또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단어와 성조를 적절히 사용하려고 천천히 말하다 보면 인내심 부족한 현지인의 복장을 터지게 하거나, 그 과정에서 말의 문맥이 자연스럽게 끝나지 않으니 현지인과의 대화가 단절되는 경험도 여러 번이었다. 어렵고 도통 실력도 늘지 않는다. 때로 오십 넘어 배우는 베트남어니까, 하며 기죽은 나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 고약한 베트남어를 잘하는 지인들을 보면 그저 존경스럽기만 하다.




신기한 것은 택시 운전사나 시장 상인 등 내가 처음 만나는 현지인과의 (빠른 속도의) 대화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 나에게 베트남어를 지도해 주시는 리엔(올해 70세 여자) 선생님의 말은 90% 이상을 알아듣는 일이다. 딸들이 다니는 현지 학교의 담임 선생님들에게 호출을 받아 학교에 가던 초창기 때는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하는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베트남어가 늘어가는 큰딸이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내가 어느 정도 베트남어를 구사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리엔 선생님이 아이들의 학교에 동행해 주시곤 했다.

딸의 담임 선생님이 말하는 베트남어는 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데, 그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을 리엔 선생님이 베트남어로 그대로 나에게 전해주는 것은 다 들린다. 희한하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과도 베트남어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밖에 나가면 현지인들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나마 가끔 인내심이 있는 현지인을 만났을 때, 천천히 말하는 외국인인 나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이해해 주거나, 서로 대화가 되면 그날은 완전 내게 운 좋은 날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도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친구들에게 천천히 말하고 오래 기다려 준다.




언어 멀미라는 것도 경험했다. '언어 멀미'는 내가 만들어 낸 단어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니까. 베트남어를 배운 지 4년 정도 지날 즈음, 도대체 실력은 늘지 않고 재미도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베트남어를 들어도 토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길을 지나가다가 현지인들끼리 대화하는 것만 들려와도 멀미를 했다. 베트남에 살면서 베트남어 멀미를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분수를 모른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고 이런 나의 상태에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언어 멀미는 일 년을 넘게 나를 괴롭혔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베트남어 때문에 베트남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어려운 베트남어를 하루 종일 듣고 있을 두 딸 덕분이었다. 나야 일주일에 겨우 이삼일, 그것도 세 시간만 듣고 오면 그만이지만 딸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종일 듣다가 오는 것이니 나는 속으로만 내 고민을 삭힐 수밖에 없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듯이 나의 그런 심각했던 상태도 끝이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었다. 거의 일 년 넘게 마음고생을 시켰던 언어 멀미가 끝나니, 억압 속에 있다가 풀려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게 된 사람처럼 정말 살 것 같았다. 베트남어가 내게 다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마음고생한 나를 토닥여 주며 화해의 눈빛을 청해왔다. 베트남어가 다정한 언어로 다가오더니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오, 나도 이제 다시 너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좋아. 우리 예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자! 그때는 내가 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어. 강렬한 눈빛으로 나도 그에게 화답하며 부끄러운 손을 내밀었는데......  


아뿔싸! 코로나 사태가 터져버렸다. 베트남은 여기저기 통제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부분이 다 봉쇄 상태다. 그 바람에 베트남어 수업도 다 멈추었고, 언어 학당에 못 나가고 있는 게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용기를 내어 겨우 다시 붙잡았던 베트남어, 그를 잊지 않으려고 혼자서 발버둥치는 중이다. 여전히 중급 앞 부분의 언저리를 유지한 채로.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면, 진하게 사랑해 볼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후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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