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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자책봉 Jun 09. 2024

퇴근 후 잡생각 2부

인스타그램 릴스, 전통의 소중함에 대하여


3. 인스타 릴스를 보면서 짧은 생각(옳고 그름이 뭘까?)


"유튜브 응비님, OX 구분을 너무나 잘 사용한 예시"

가끔 인스타 릴스를 보고 있으면 눈에 띄는 게시물들이 있다. 가령, 특정 상황에 특정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며, O와 X를 나눠서 보여주는 영상 같은 것들이다. 최근 봤던 건 러닝 자세와 관련된 영상이었는데, 러닝 자세를 보여주며 무릎과 허벅지를 얕게 올리는 자세에는 X를, 무릎과 허벅지를 충분히 높게 올리는 자세에는 O라고 표시한 영상이었다. 정말 전자는 틀린 자세고, 후자는 맞는 자세일까?


굉장히 이상한 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저 처자는 무릎과 허벅지를 얕게 올리면서 뛰는 자세를 잘못되었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뛰는 사람의 체형, 속도, 컨디션, 도로 상황, 지형 등에 따라 주법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이게 운동 기구에 대한 사용법도 아니고. 러닝을 자주 하는 터라 특히나 더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보니 나의 의구심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댓글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엔 영상을 올린 작성자가 남긴 대댓글이 달려있었다.


저는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서 그렇다고 한 거고요. 무릎을 얕게 올리는 걸 틀렸다고 한 건 아니에요. 제 영상 속 어디에 그렇게 했나요?


뭐지 이 수준 떨어지는 답변은. 아무런 설명 없이 영상에 달랑 O, X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 밀은 건 본인인데, 의문을 표하자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본인이 어떤 영상을 만들었는지도,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인간이 무지성에 사로잡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게 확실해 보였다.


작성자는 현재 팔로워 수 10만의 나름 이름 있는 인플루언서인데, 안타깝게도 해당 글은 다시 찾아보니 삭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상한 건 모조리 찍어놓는 습관을 가진 내게는 그 캡처사진이 남아있었다.


과연 이 세상엔 옳고 그른 것이 있는가? 특정 상황에는 반드시 특정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왜 전쟁 중에 살인은 정당하고, 어젯밤 살인은 옳지 않은가? 왜 회식에 참여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고,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왜 책상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앉는 자세는 잘못된 자세고, 비좁은 건설 현장에서 허리를 구부리는 건 당연한 것인가? 왜 당신이 자유를 쫓는 건 옳고, 타인이 쫓는 건 옳지 않은가?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예시가 우리 일상에 즐비한다.


질서와 체계. 의식과 무의식. 인간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여러 관습과 관념들에 의해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세뇌당하고 있다. 이를 전문용어로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 고안한 윤리, 도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중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결코 그 문화는 진리라고 믿을만한 것은 아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어느 시대에는 아무 일이 아니었던 것이 어느 시대가 되면 범죄로 규정지어지기도 하고, 같은 행동을 상황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볼 수도, 해야만 하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는 행동에 원래 옳고 그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자유로운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걸어갈 수도 있고, 평지에서도 숨이 차면 얕은 뜀박질로 살살 걸어갈 수도 있다. 무릎이 아프지 않으면 힘차게 뛰어갈 수 있겠지만, 무릎이 아프면 천천히 뛸 수도 있다. 무지는 지식이 없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무지란, 나와 다른 상대방을 공감하지 못하고 고려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그로성으로 영상을 뽑아냈다고 하면 게시자는 충분히 의도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다. 게시자가 마구 찌그려 놓은 영상 하나가 이런 짧은 고찰을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시대가 "누칼협, 알빠노" 시대라지만, 이렇게 수준 낮은 게시물을 보면 가끔 화딱지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4. 전통은 반드시 소중한 것일까에 대한 짧은 생각(KBS 다큐를 보며)


"벤쿠버 조선일보 사진 참조, 사물놀이"

KBS 다큐멘터리 영상의 끝무렵에 들려오는 내레이션을 듣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과연 전통은 정말 소중한 것일까? 그게 맞나? 옛 것은 모두 소중하고, 옛 것은 모두 숭고한 의미를 지녔고, 옛 것은 모두 보존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의 진보 덕에 산업 전반의 생산성은 이미 인간 노동력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이에 따라 인간이 믿는 가치 또한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인류의 생존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종교는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해졌다. 오래전 인간의 순수 노동으로 이뤄지던 농업은 이제는 기계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되었고, 한 개를 만들던 공장의 생산기계는 이제는 열 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무어의 법칙은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어제의 기술이 오늘의 뒤처진 기술이 되고, 어제의 패션이 오늘의 올드패션이 되는 세상이다. 어제 만들어진 제품은 오늘 더 이상 신제품이 아니다. 이 같은 세상에 과연 옛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의미와 특성, 그리고 가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이것을 진부한 것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진부한 것이라면 우리는 옛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2024년을 둘러볼 때 오히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 것에 의존하는 건, 충분히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생존에 그다지 유리해 보이지는 않는 게 사실이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고 하지만, 본질이 변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사실 전통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대부분 옛 시절의 생활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즉, 시대에 맞는 제품과 시대에 맞는 관습, 시대에 맞는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변화하는 세계에는 그에 맞는 전통, 생활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옛 것은 모조리 없어져야 하는 것들인가?


모든 것에 절대적인 것이 없고, 영원한 것이 없다. 세상에 진리가 없다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는 건 가장 가능성 높은 진리 중 하나다. 인간은 결국 모두 죽고 세상에 남는 건 모두 흙으로, 우주로, 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옛 전통 또한 자연히 존재하지 않게 된다. 굳이 인간이 나서서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옛 것들은 알아서 도태되기 마련인 것이다. 문화대혁명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화대혁명이 필요 없는 이유다.


다만,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인류의 역사적 연속성을 고려할 때 현생에 남은 우리에게는 전통 같은 옛 것을 존중할 의무는 분명히 있음직 하다.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와 전통음악 BTS"

앞으로는 팽이치기가 아니라 스타크래프트가 민속놀이가 되고, 사물놀이가 아니라 BTS 노래가 전통음악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도 곧 지나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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