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 앤 드루얀
꼭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다. 아직은 너무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미래, 그것과는 다른 가능한 세계가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각성한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인류가 새로 얻은 힘에 따르는 과제에 맞서서 과학 기술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아직 이뤄낼 기회가 있는 그 미래로, 나와 함께 가자
- 본문 중에서
별로 오르는 사다리
오, 위대한 왕이시여
사라진 생명의 도시
바빌로프
우주의 커넥톰
1조 개의 세계를 가진 남자
지구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서
카시니의 희생
거짓 없는 마법
두 원자 이야기
생명 거주 가능 영역이라는 덧없는 축복
인류세를 살다
가능한 세계
작가 앤 드루얀(Ann Druyan)
앤 드루얀은 미국 항공 우주국 보이저 성간 메시지 프로젝트의 기획자였고, 2005년 러시아 ICBM으로 발사된 솔라 세일을 활용한 최초의 심우주 탐사 우주선 프로그램의 기획자였다. 작고한 남편 칼 세이건과 함께 1980년대에 <코스모스>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들어서 에미 상과 피보디 상을 받았고, 6권의 책을 함께 쓰고 엮어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렸다. 드루얀은 또 워너브라더스 제작, 조디 포스터 주연, 밥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콘택트'를 공동 제작했다. 폭스 채널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제작한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의 대표 제작자, 감독, 공동 작가로 2014년 피보디 상, 미국 제작자 조합상, 에미 상을 받았다. 에미 상 13개 부문에 오른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는 전 세계 181개국에서 상영되었다. 드루얀은 2020년 첫 방영될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의 총 제작자, 작가, 감독이다. 소행성 세이건(2709)과 드루얀(4970)은 결혼반지 같은 궤도를 그리며 영원히 함께 태양을 돌고 있다.
먼저 이 책의 존재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 과연 <코스모스> 같은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우려했던 세간의 의문을 완전히 종식시켜 버릴 만큼 훌륭한 책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에는 우주를 소재로 하는 많은 작품들과 달리 우주에 대한 설명들, 그러니까 별, 행성 등 이론적 설명에 집중하기보다는 조금은 옅고 폭넓은 관점 그리고 철학적 고찰 위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는 학문적인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좀 더 우리 인간들의 실생활과 연결 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실용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칼 세이건이 'Pale Blue Dot', 이른바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 한 장으로 인류의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앤 드루얀 역시 몽매한 인간들을 계몽하고자 하는 의지를 어느 정도 따른 것 같다.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계산이나 설명은 과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렇듯 교육자 혹은 작가들은 그것을 대중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학문이자 때로는 종교처럼 묘사되는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과학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란 반드시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이미 우리 실생활에 녹여진 경우가 많고, 지금도 어디선가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실생활로 스며들고 있을 거니까. 그러나 어쨌든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러시아 과학자 바빌로프는 그가 러시아 전역의 기근을 막아내는 데 무지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감옥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는 한 가지는, 앤 드루얀이 분명 칼세이건의 의지를 따른 것은 확실해 보이면서도 그가 써 내려갔던 구체적인 논리의 흐름이나 설명들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편안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보통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존재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의 차이와 비슷한 종류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상상할 때 더욱 따뜻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읽을 때 복잡하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읽을 수 있고,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가 주는 영양분을 일방적으로 받듯, 그녀의 글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은 훌륭한 비빔밥이다. 인간 지성의 모든 것이 총집합되어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이루면서도 결국 우주라고 하는 참기름에 의해 하나로 종합되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무지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나 혹은 종교적 색채를 띌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인류는 아직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인간이 이해하기에 우주란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우주와 관련된 책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철저하게 지식 전달을 목표로 하는 책, 그리고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한 경험처럼 천문학적 이야기를 하는 책. 그런데 단언할 수 있는 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리고 아내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은 모두 앞서 말한 두 가지 범주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가 더 훌륭한 것 같다. 두 가지 범주를 더 적절하게 조화시켰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물론, 출판 연도나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하면 당연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한참 못 미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정말 훌륭한 책이지만, 분명 초반에는 지루하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종류의 지식만 가지고는 결코 불가능하다. 물리학만 안다고 해서 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문학만 안다고 해서 별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학만 가지고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물리학, 천문학, 수학을 뛰어넘어 역사, 문화 등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종류의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서야 이해가 가능한 불가분의 영역이다. 또한 동시에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신적인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곤란하니까. 결국 이것은 인류의 긴 항해를 위한 등불과도 같다. 우주는 그만큼 어려운 존재이면서도 유일한 희망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결국 우주에 수렴한다. 지구에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광대한 우주에선 먼지만 한 영향력조차 미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오늘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는 말이다. 이 미세한 움직임이 모여 만들어내는 변화는 결코 작지 않다. 인간의 지식과 탐구심이 쌓여 과학과 문명이 발전했고, 우리는 이제 지구를 넘어 우주를 향한 여정을 꿈꾼다. 우주에서 보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인간의 의지는 한없이 크고 고귀하다. 인간이 만들어가는 모든 변화는 궁극적으로 우주라는 거대한 퍼즐의 작은 조각이 되어, 우리의 존재와 가능성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것이다. 앤 드루얀의 책 <코스모스>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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