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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Oct 23. 2021

가족의 의미 下

일을 그만두기까지 5

적금은 들지 않았다




일을 하는 동안 적금은 들지 않았다. 일한 지 얼마 안 됐기에 돈을 모으겠다는 굳은 결심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사실 나에게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지금 보면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은데, 당시의 나는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고 다녔겠지?)


이미 몇 차례 이직을 경험한 바,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 직장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 시간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예를 들면, 적금 기한에 맞춰 퇴직을 미룬다던가.

꾸준히 저금하지 않는다 해도 딱히 돈을 허투루 쓰는 것도 아니니, 적금의 여부는 돈을 모으는데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돈을 쓰지 않는다면, 안 쓴 만큼 통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텐데 걱정할 게 무어 있나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적금 기한에 맞춰 퇴직을 미루다니, 아니, 적금 몇 달 들 그 정도의 여윳돈도 없나 싶고 정 부담되면 큰 금액이 아닌 소액으로 꾸준히 저금해도 될 텐데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다 싶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느라, 도대체 뭐가 더 중한지 몰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봐도 적금 이자 챙기는 것보다야 내 직장 문제가 더 중요한데 말이다.

일을 그만두는데 지금 적금 따위 신경 쓸 계제인가. 적금이 뭐라고 그냥 깨버리면 되지 직장 그만둘 때 적금까지 고려하는지. 참 세세하게 별 곳까지 생각이 다 미친다 싶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것 하나도 손해 보고 싶지 않고, 한 번 가입한 적금은 깨고 싶지 않은 사소한 강박 같은 것들이 그 당시 나를 단편적이나마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자면 내 경직된 사고 같은 것 말이다.

그때의 내겐 해야 하고, 해내야 하는 등 내가 원치 않더라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누구도 정하지 않았고 따라야 한다는 강제성도 없었지만, 그래야만 한다는 암묵적인 명제들이 나를 옭아맸다. 













돈 좀 모아둘걸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제나 머리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걸 보면, 나에게 직장을 그만둔다는 선택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마음만 먹으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에 가까웠는데,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직업 특상 상 이직이 쉬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힘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일을 그만두기로 겨우 마음먹었는데, 막상 지르려고 보니 그동안 돈을 모으는데 큰 관심도 없었던 데다가, 적금도 들지 않았던 내 수중에는 돈이 별로 없었다. (내 편을 좀 들어보자면, 솔직히 일한 기간이 짧기도 했다)


당장 몇 달은 버틸 수 있겠지만, 앞으로 언제가 될지도 모를 재취직을 바라보며 그동안 발생할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나는 금전적인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나에게는 보험, 연금, 주택연금 등으로 매달 나가는 최소한의 돈이 있었는데 몇 번의 백수생활로 일찍이 경험한 바, 이는 무시 못 할 금액이었다. 직장을 다닐 때라면 모를까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크지 않은 그 금액조차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뒤늦게 후회했다. 돈 좀 모아둘걸. 열심히 적금도 들고,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미리 대비라도 해 둘걸. 그러나 내가 아플 걸 내가 알았나? 창창한 20대에 그럴 줄 누가 알았냐 말이다. 


나는 일을 잠시 쉴지언정, 일을 하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인 요즘은 또 그렇지 않지만)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서 일을 그만둘 때가 돼서야 그만둘 줄 알았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무 준비도 없이 직장을 그만둘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때를 후회하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내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없어서 문제면, 채우면 되지




드디어 나는 직장을 그만두기 위한 마지막 고비에 다다라 있었다. (가까스로 여기까지 도달했다) 나는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문제는 매달 내야 할 돈이 있다는 것이고, 내가 모아둔 돈으로는 그리 오래 버틸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 얼마 안 있어 또다시 일을 구해야 할 수도 있었으니까. 


해결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미리 서로 합의를 마쳤는지, 가족들이 다 같이 우르르 내 방에 찾아와 돈을 주겠다 말한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돈 때문에 일을 그만두기 힘들다 말하면서도 이런 방안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는데, 아마 아직도 마음만은 소녀 가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입장을 바꿔 누군가에게 돈이 없어서 문제면, 돈을 주는 것 외에 다른 묘안이 있을까 싶은데, 당시 나는 그 단순하고 쉬운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양식장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내가 만들어둔 기준 밖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눈물의 용돈 협상




어쩌다 보니 나는 이때도 울고 있었는데, 솔직히 지금 와선 돈 준다는데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를 이해 못 하니, 당시에 나를 이해할 사람이 있었을까. 


그때쯤엔 늘 그랬던 것처럼 이미 가득 차 버린 물 잔이 이유 없이 쉽게 흘러넘치곤 했다. 물 잔이 언제 이렇게 가득 차 버린 걸까? 작은 움직임에도 왈칵 넘쳐버릴 만큼, 한 방울의 물방울에도 찰랑일 만큼 나는 불안정했다.

그때 내가 아픈 환자였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두통은 비단 몸의 고통에서 그치지 않고, 정서적인 부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았다.  




얼마 줄 거야?




'필요한 돈을 줄 테니 일을 그만두라'라는 몸소 나를 찾아와 전하는 가족들의 친절한 제안에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럼 일을 그만둘 수 있을 테니까. 정말 나를 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울면서도 나는 이 좋은 제안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럴 상황도 그럴 주제도 안되면서 나는 자세한 사항을 물었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지!)




얼마 줄 수 있는데?




나는 용돈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도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수준인지 알고 싶었다. 부모님 집에 같이 살고 있으니 월세나 식비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내 개인적인 보험과 연금 등을 중지하지 않고 매달 납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금액이 되는지, 통신비와 병원비 등을 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되는지 궁금했다. 


'얼마 줄 거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숫자, 그러니까 대략적인 금액이었다. 더불어 얼마 정도여야 가족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선인 지도 알고 싶었다. 가족들은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몰랐겠지만, 그 당시 나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가족들이 나로 인해 무리하지 않았으면 했다.


얼마 줄 수 있냐는 내 말을 들은 언니는 곧장 이렇게 말했다.





얼마면 되는데?





'얼마면 되냐'라는 답이 돌아오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런 말이 돌아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러나 언니의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을 번뜩이며 지나갔던 생각은 '얼마 줄 수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대답해?'였다. 

상대의 한계선을 모르니,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요구를 하겠는가. 요구까지 할 순 없었다. (주는 것도 감지덕지지)


그러나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요구고 자시고 그전부터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걸까? '얼마를 줄 수 있냐'니 이게 웬 말이란 말인가.   

사실 금액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준다는 마음이 고맙고, 적은 금액이라도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할 텐데. 그러나 나는 또다시 세세한 것에 집착하고 있었고, (가족들이 주는 용돈으로 정말 일을 그만둬도 되는지가 궁금했다)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은 한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나의 생각 없는 물음과 언니의 되물음으로 가족들의 친절한 제안이 협상 아닌 협상으로 바뀌어 버린 듯했다. '얼마면 되냐'라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더 받아내겠다는 생각보다 어안이 벙벙했던 것 같다. 터무니없는 말을 이미 건네버린 것도 당황스러운데, 이런 답이 돌아올 줄은 또 몰랐던 것이다.


얼마면 되냐니, (지금 보면 '이야~ 멋있다! 말하는 대로 다 줄 거야?' 까불거리고 싶지만) 솔직히 맡겨놓은 돈도 아닌데 내가 얼마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란 말인가. 











금액과 기간




'얼마면 되냐'는 언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도 그 이전에도 그냥 고맙다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고 또 곧이곧대로 매달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말했다. 




OO만 원이 필요해...




내가 말한 금액을 들은 언니가 아주 잠깐 멈칫하더니, 오래 생각할 새도 없이 자신은 얼마를 매달 부담하겠다 대뜸 말했다. 


가족들은 내가 일을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한 바가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금액이나 기간 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 와중에 언니가 제일 먼저 치고 나온 것이다. 


나와 언니를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엄마와 아빠도 곧 각자 얼마씩 주겠다고 소리쳤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나는 한 발 뒤로 빠져있었다. 

서로 얼마를 주겠다고 여기저기서 소리치는 모습이 시끌시끌해서 상황에 맞지 않게 조금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도 지금 서로 돈 주겠다고 난리라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어이없어하셨다. (그렇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언니의 주도하에 차례로 금액이 정해지고, 누구는 매달 돈을 보내겠네, 누구는 몇 개월 치를 미리 입금하겠네 각자 선호하는 송금 방식을 토로하다가 토론의 주제가 '용돈 지급 기간'으로 옮겨졌다. 언제까지 금전적인 지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이다.

언제쯤 내가 나아지고 언제가 돼야 일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서 딱 떨어지게 정하기 애매했을 것이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별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들은 최소 6개월, 그리고 1년까지 매달 돈을 주겠다고 했다. 누가 먼저 이야기했는진 모르겠다. 아마 아빠가 아니었나 싶다. '이 정도 기간이면 건강을 좀 회복할 수 있겠지'라는 판단과 적어도 그 기간 동안은 걱정하지 말라는 마음이 합쳐져 도출된 결론이었다. 


일정 금액과 최소 6개월, 최장 1년이라는 기간을 가족들이 보장해 주자 앞날이 슥슥 구체적으로 그려지면서 나는 정말 일을 그만 둘 확신이 생겼다. 그 정도 기간이면 시간도 넉넉한 것이 뭐가 되든 할만하다 싶었던 것이다. 뭐가 돼도 될 것 같았다. 희망이 보였다. 












모든 게 잘 될 거 같아




내가 마지막 타자로 취업한 이후, 우리 가족 모두가 일을 했는데 (짧은 황금기였다!) 수입이 있는 모두가 십시일반 하여 나에게 용돈을 주기로 했다. 그것도 최소 반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말이다. 

이렇게 쉽게 휙휙 정해도 될까 싶었는데, 얼렁뚱땅 그 자리에서 땅땅 완결 지어졌고,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에 나는 피식피식 저절로 비집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뭐가 좋았냐 하면 그냥 다 좋았던 것 같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것도,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나에게 용돈을 주는 가족들도.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라면 부담스러웠을 금전적 지원이 가족이 하니 고맙기만 했다. 금액, 기간, 돈을 주는 상대, 다 만족스러웠다. 


3명에게서 각출한 돈이 모이니 생각보다 꽤 커서, 시방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오다니... 가족들도 내게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오게 돼서 놀란 눈치였다. 아무래도 이 정도까지 지원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합치고 보니 많은 걸 어떡해?) 

나만 좋았다. 쉬면서 그리 많은 돈이 정기적으로 입금된 적은 처음이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 이럴까. 마음이 든든했다. 


돈이 들어오는데 쓰지 않으니, 당연하게 돈이 남았다. 웃기게도 용돈을 받아쓰는 와중에 나는 일할 때도 들지 않았던 적금을 들었다. 돈을 필요성을 체감해서 일까. 아프니 돈 쓸 일이 없기도 했지만 때아닌 적금이 참 웃기다 생각했다. 












가족의 의미 




이번 일을 계기로 가족에게 멀어졌던 마음의 거리가 확 줄어들었다. (가까워지다 못해 찰싹 달라붙어 버렸네) 일련의 사건들로 가족 간의 교류에 잦아짐에 따라 친밀감이 급상승했다. 


단지 금전적인 지원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눈에 보이는 돈의 이동이 내 곁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쉽고도 효율적으로 증명해냈다. 그래. 내 곁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아프다 하니 당장 일 그만두라며 매달 돈을 보내 줄 사람이 셋이나 되는 것이다. 축복받은 일이었다. 


가족이 나와 같은 입장이라면 나도 기꺼이 돈을 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줄 수 있는데,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나서서 먼저 달라는 말을 하기는 참 힘들 거 같다. 돈을 달라는 말을 어느 누가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정말 생각도 못 했지만, 설사 생각했더라도 하지 못했을 말을 먼저 꺼내 줘서 그렇게 나를 도와줘서 너무 고맙고 또 고맙다.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되게 오래된 이야기 같다) 벌써 기억 속의 일이 돼버렸다. 


나도 가족도 각자 힘든 시간이었다. (가족 구성원이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힘이 드나 보다) 그리고 나는 비 온 뒤 땅이 굳듯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족. 가족에 대해서.



내가 혼자 해내지 못하는 일을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
힘들 때 도움을 주는 사람
내가 헤맬 때 강력하게 길을 제시하는 사람
간섭할 수 있는 사이
서로 힘들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이
내가 손해를 봐도 되는 사이
어쩌면, 의지해도 되는 사이




나를 좀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 참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과거엔 못 했을 그 말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은 그런 관계니까. 내가 도와주고 기꺼이 날 도와주는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항상 받는 입장이었지만, 그 반대라면 나도 힘껏 도왔을 것이다. 몸소 겪고 나서야 얻게 된 늦은 깨달음이었다. 


가족에게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든든하다고 말하고 싶다. 건강히 오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왕이면 평탄하게)












집고양이 




언젠가 언니가 '넌 너를 주변에 기댈 사람 하나 없는 천애 고아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독립심의 발로였지 않나 싶은데, 이상한 쪽으로 진전되었는지 나는 정말 혼자라고 생각했다. (너무 삭막하게 살아왔나) 


나는 나 혼자 잘 살고 싶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 혼자서라도 잘 살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서도 잘 사는 내가 가족과 잘 지내고 싶었다. 내가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들 하는 만큼은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랐는지, 오만한 구석이 있어서 내가 못할 건 없다 생각했는지. 그보단 욕망이 능력을 앞섰던 걸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책 한 권 읽었다. 책에는 여동생을 집고양이처럼 여기는 언니가 나왔다. 동생은 생활력이 없어 돈을 못 벌지만, 애초에 언니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동생은 혼자서 뭘 하는지 조용히 만족스럽게 잘도 지낸다. 독립적으로 고고히 생활하는 고양이. 따뜻한 털 뭉치. 언니에게 동생은 딱히 무언갈 하지 않아도 집에 있는 것만으로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 그런 존재였다. 


동생을 집고양이로 묘사하는 부분은 단 몇 차례 서술될 뿐이었다.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하루가 지난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그 책 속의 동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에게 고맙고 보탬이 되고 싶지만, 그들이 그랬듯 내가 되돌려주진 못할 것 같은 느낌. 왜인지 나는 나 하나로도 버거워서, 그저 내 한몫해내는 게 참 힘이 들었다.


건강을 잃고, 한순간 나를 이루는 모든 게 멈추고, 그래서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모든 초점이 오로지 건강에만 닿아서, 나조차도 다른 무엇을 우선시할 수 없었다.

가족 누구도 나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게 부담 없고, 좋으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괜한 아쉬움일까.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데,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대해 달라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하는 게 몸서리 칠만큼 싫었는데, (홀로 기대하고 실망하는 게 바보 같다 생각했다) 기대가 단지 버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기대는 단순한 바람을 넘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과 믿음의 교차점에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판단에서 나는 이제 한 걸음 뒤처져 버린 거라고, 기준선에 서지도 못하게 됐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꿈은 창대했으니, 나는 고작해야 집고양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 취향은 집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였다. 타고나길 호랑이로 태어날 수 없다면, 그 근처라도 가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누군가가 없어도 홀로 살아가는 강인한 호랑이.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강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멋진 호랑이가 되려다 한치 모자란 귀여운 고양이가 되었나 보다. 독립적이지만 안락한 집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한계점을 존재로. 어딘가 생활력은 부족하지만, 보호받는 영역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털 날리는 생물로 말이다. 


내가 바랬던 건 분명 이게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니 집고양이 팔자가 상팔자인 것 같기도 하고, 마냥 나쁘지 않다 싶다. (단지 주인님이 버거우실까 걱정이 될 뿐) 

나름대로 집고양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삶을 풍요롭게 한다던가, 위로가 된다던가, 심신안정을 시켜준다던가... 살아있는 생물체가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따뜻함을 떠올려 본다면 말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있어 다행이다 싶고, 비록 내가 바라는 방향은 아니더라도 이라도 잘하고 싶다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내는 휘발유는 못 되더라도, 기계를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는 되고 싶다고 말이다)

내가 다시 집 밖으로 나갈 날이 또 없겠는가. 그때까지 나를 믿고, 가족을 의지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이 순간을 누리려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받아들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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