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호연 Jun 03. 2022

오늘의 우동

이별 후에 오랫동안 우동을 먹지 않았다


20대에는 장거리 연애를 했다. 7년의 시간이었다. 그 시절에 가장 많이 사 먹은 음식은 고속터미널 식당에서 파는 삼천 원짜리 우동이었다. 주말이면 애인이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탔다. 빈속으로 헐레벌떡 버스에 오른 날도 많았지만 20분이라도 일찍 도착하면 반드시 우동을 먹었다. 우동은 식당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음식이었다. 면을 익히는 데 2분, 그릇에 담고 토핑을 올리는 데 2분이었다. 나는 주방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1분마다 시계를 들여다보며 10분 안에 식사를 마치곤 했다. 다 먹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 무던한 면발과 생파를 썰어 넣은 짭조름한 장국은 버스를 타고 다른 지방으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돕곤 했다. 어차피 그날 저녁이면 돌아오는 여정이었음에도 설렘보다는 매번 두려움 속에 버스에 올랐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일까?  


이별 후엔 오랫동안 우동을 먹지 않았다. 아무리 맛있는 우동을 먹어도 고속터미널의 인스턴트 우동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헤어질 용기가 없어 묵혔던 인연은 오랜 후회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동을 마주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느긋하게 기다려 받은 음식을 찬찬히 음미하며 먹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로든 급하게 떠나지 않아도 된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집은 오직 나를 위한 장소이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은 자유로운 공간.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떠남을 감당할 수 있다. 떠나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두렵지 않다.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내릴 것이다. 이젠 그런 확신이 있다.  


이사 온 동네를 산책하다 발견한 일식당에서 오랜만에 우동을 시키면서 생각했다. 지금 이 음식에 집중해 보자고. 젓가락으로 집기 어려울 만큼 매끄럽고 도톰한 면발, 진하게 우려낸 육수와 채소의 향을 품은 깊은 간장의 맛. 이렇게 적당한 우동이라면 가끔 먹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음식을 열렬히 구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허기진 어느 날, 이 근처를 지나게 된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우동을 먹겠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온전히 나의 속도를 즐기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짭짤이 토마토와 짜파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