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에 곁들이면 채소, 후식이면 과일
대저토마토를 주문했는데, 강동 토마토가 왔다. 둘 다 맛이 뛰어난 짭짤이 토마토이지만 대저토마토는 부산 대저동에서 나는 토마토를 특정하는 것이라 다른 지역 토마토에는 '대저'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사실상 판매자가 산지를 속이고 판매한 셈인데 이것을 바로잡자니 멀쩡한 토마토를 버리는 셈이 될 것 같아 그냥 먹기로 했다. 사람의 잘못이지 토마토는 죄가 없으니까.
토마토는 항상 '채소냐, 과일이냐' 논란의 중심에 있다. 식물학적으로는 개화식물의 씨방이 발달한 것이므로 과일이 맞지만, 문화권에 따라서는 여전히 채소로 분류되는 것이다.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채소에만 부과하는 관세를 토마토에도 부과하는 것으로 판결을 내렸는데(Nix vs Hedden case), 그 이유가 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이라 하더라도 디저트로 먹기보다는 대부분 요리에 쓰거나 곁들이기 때문에 채소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판결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이지만 대저토마토, 아니 '짭짤이 토마토'는 예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요리에 넣어도 맛있는 요리가 되지만, 특정 지역에서 아주 짧은 시기에만 생산되는 이 귀하고 맛있는 토마토는 후식으로 먹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아... 아니다. 나는 밥반찬으로도 토마토를 썰어 먹는데, (맛있는 토마토는 좋은 반찬이 된다) 그럼 이것은 과일인가 채소인가? 논쟁을 시작하자면 문화권까지 따질 것 없이 집안에서도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짜고 시고 달고 단단하여 풋풋하기까지 한 짭짤이 토마토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식사에 곁들이는 짭짤이 토마토는 별다른 양념이나 조리 없이도 입맛을 돋운다. 오늘 점심은 짜파게티. 1인당 한 개를 끓이면 늘 아쉬운데 짭짤이 토마토와 함께 먹으니 기분도 위장도 허전하지 않다. 이 정도면 건강하게 먹었다는 착각까지 든다.
SNS에서는 짜파게티 끓이는 꿀팁으로 '처음부터 물을 적게 넣어서 끓이라'는 의견이 대세이지만 나는 따르지 않는다. 라면 회사의 제품개발팀이 수십 년 연구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물을 따라내야 하는 번거로운 레시피를 바꾸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손에 익은 방법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강박적으로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레시피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면을 익히고 물을 따라낼 때 조금 넉넉하게 물을 남긴 다음 소스와 함께 1분 더 볶아주는 방식이다. (대신 면을 1분 덜 익힌다) 소스와 함께 추가로 볶으면, 짜파게티의 중화소스와 조미유가 면에 골고루 입혀지며 전분이 졸아들어 탄력 있는 맛이 난다. 따지고 보니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더 번거롭게 만들어 먹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이렇게 만든 짜파게티 맛이 십수 년 동안 뇌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 이상(理想)의 짜파게티는 이것이다. 우연히 처음부터 물을 적게 넣어 끓인 짜파게티 맛을 보게 된다면 변심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짜파게티 대신 다른 짜장라면을 선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짜파게티의 기억된 맛에 집착하는 것이다.
짜파게티를 먹을 때는 매번 다른 것을 곁들여 먹으며 어떤 음식이 짜파게티와 어울리는지 시험하곤 한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묵은지, 그린 올리브, 그리고 오늘의 짭짤이 토마토가 최고의 조합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짭짤이 토마토는 후식으로 먹어야겠다. 과일이든 채소든 상관없으니 되는대로 내 뱃속에 넣어버릴 것이다. 얌냠,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