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
6월이면 동네 청과물 가게들은 비닐봉지에 한 무더기씩 담은 참외를 가게 앞에 진열해 둔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날이라도 샛노랗게 여문 과실이 터질 듯이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이건 사야 해.' 손가락이 배기도록 무거운 봉지를 들고 집까지 걷는 길은 버겁지만 달콤한 향이 솔솔 풍기는 참외를 크게 와작 베어 무는 상상을 하면 모든 것이 참을 만해진다. 냉장고 야채칸을 그득하게 채워두고 심심할 때마다 야금야금 꺼내먹는 맛. 여름이란 계절이 나에게 허락한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오늘 간식은 내 주먹만 한, 혹은 그보다 작은 참외 두 개다. 알이 굵은 참외보다 딱 이만한 참외가 좋다. 보통 아주 달지만 덜 달아도 개운하니 좋고, 씨앗이 여려서 긁어내지 않아도 적당히 씹어 삼키기에 어려움이 없다. 어떤 이들은 참외를 보급형 멜론이라 여긴다지만 나는 멜론보다 참외가 좋다. 작아서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좋고, 어떤 참외를 골라도 보통 이상의 맛을 보장하는 것도 좋다. 멜론을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해지고 즙이 많아도 목이 칼칼한 느낌인데 혹시 이건 알레르기 반응이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본능적으로 참외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외는 단단해서 오래 두고 먹는 편인데, 과숙해서 무른 참외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껍질이 말라 쪼글쪼글한 것들은 깎을 때 시원스럽지 않지만 막상 씹으면 맨입에는 그저 달다. 속이 너무 물러서 상한 것 같은 참외도 오묘하게 변한 그 맛을 즐기며 씹는다. 나의 장기(臟器)는 실로 효과적인 음식물 처리기다. 평소에는 예민한 사람으로 자신을 분류하며 살아가다가도 과일 앞에서는 무던해진다. 인간과 자연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단맛과 향, 태양이 채색과 선명한 색과 저마다의 식감을 즐기면서 손쉬운 행복을 느낀다. 먹이 하나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동물적인 단순함은 두말할 것 없는 장점이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제철 과일이 있어서가 아닐까. 단돈 만 원으로 일주일간 행복했으니, 세상에 이런 가성비는 없을 것이다. 남은 참외를 동냈으니, 어서 가서 한 봉지를 더 사야겠다. 그것으로 다음 일주일간의 행복도 충전 완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