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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호연 Jun 24. 2022

시원하게 먹는 보이차밥

혼몽한 아침, 기운을 찾아주는 밥


차에 밥을 말아먹는 음식 ‘오차즈케’는 동거인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래봤자 물에 말은 밥이지’하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막상 먹어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맛. 차밥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거인 덕분에 오늘 아침 끼니는 차밥이 되었다. 일본식이라면 녹차에 밥을 말겠지만 오늘의 ‘차(茶)밥’은 보이차를 부은 것이다. 


보통 기름기가 있는 중화식 요리나 고기 구이에 보이차를 곁들이면 입안과 식도에 남은 잡맛과 기름기를 세척하듯 맑고 개운한 기분이 된다. 이처럼 음식에 곁들일 때는 뜨겁게 마시는 편이나 물병에 찻잎을 담가 하룻밤 냉장고에 두었다가 먹는 냉침(冷浸)은 여름 동안 더위를 물리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우는 음료다. 차밥으로 말아 먹는 보이차는 바로 이 냉침 보이차를 활용한 것이다. 오차즈케에는 시큼짭짤한 우메보시(일본식 매실절임)를 올려 먹는 게 정석이지만 우리집에서는 다른 반찬 대신 찻잎을 올려 밥알과 함께 씹어 먹는다. 이 찻잎은 냉침으로 우린 것이 아니라 오직 차밥 위에 올리기 위해 물을 끓여 뜨거운 물에 새로이 우려낸 잎으로, 차향이 남아 있으되 쓴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보들보들한 찻잎과 쫀득한 현미밥을 한데 씹으며 두 재료의 구수함이 뒤섞이는 것을 음미한다. 찬 음식인 만큼 소화를 돕기 위해 오랫동안 자근자근 씹다 보면 뭉개진 밥알에서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현미밥이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백미밥은 물에 말았을 때 쌀이 금방 풀어져 찻물이 탁해지므로 어울리지 않고, 마지막 한 수저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쫀득한 현미야말로 보이차와 적절한 궁합을 보여준다. 


장마가 끝나고 날이 한층 더워지면, 열대야에 시달리는 날이 많을 것이다. 더위에 잠을 설쳐 혼몽한 아침에는 시원한 차밥으로 바짝 기운을 되찾으면 좋을 듯하다. 아주 더운 날에는 커다란 얼음을 동동 띄워서, 국물용 숟가락으로 천천히 떠먹어야지. 보이차에 밥을 말아 먹다니, 왠지 소탈한 행색의 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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