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윌북 출판사에서 책을 받았다.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이라는 부제가 달린 고고학 에세이이다. 고고학이라고 하면 내 삶과는 거리가 먼 오랜 과거의 산물, 또는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단지 모르는 세계에 대한 흥미로 읽을 뿐,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답을 찾고자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이 다소 절박하게 느껴진 것은 나 역시 거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파국과 절망으로 가득한 뉴스들 가운데서 매일 살아갈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내게는 어쩌면 처방과도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기념비적으로 여겨지는 유물과 유적을 중심으로, 과거의 우리, 돌도끼를 쓰거나 동굴에 그림을 그리거나 사냥을 하던 옛 사람들의 감정과 삶을 현대인인 ‘우리’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수만 년, 수십만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해석이 본래 사실과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확신에 가까워진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제는 단순하다. 가족, 공존, 집, 상실, 사랑, 죽음…과거에도 현재에도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들이다.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주 개인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당연함. 에세이임) 나 역시 이 책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구석기 시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이 책을 통해 진실로 믿어진다.
저자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책 곳곳에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추정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말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또다른 ‘이야기’로서의 성서가 저자의 집요한 인간성 탐구에 거부할 수 없는 실마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오래된 뼈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유하고 이름을 붙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일은 때론 불가능해보이고 절대적 행운이 따라야 하며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하지만 그 모든 시도가 유의미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가 끝없이 삶의 의미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 답을 얻기도 한다. 내가 속한 세계는 영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감정도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주는 자유가 분명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효용이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이 너무 문학적인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용을 읽고 나니 책에 관해서는 이보다 정확한 제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고, 죽음을 들여다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꺼내 놓는 삶이 잠들어 있다. 우리가 들여다 보려고 애쓰지 않을 뿐. 아무래도 저자가 영국인이서 생기는 거리감이나, 내가 아시안이라서 느끼는 소외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후에 국내에서 발굴되는 유적이나 유물을 바라보는 마음은 크게 달라질 것 같다. 고고학자가 아니라도, 현대인의 감정과 생각으로 옛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시도를 해볼 수는 있는 것이니까.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윌북)